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나의 첫 한국어 교재는 옛날에 쓴 것 같았다. 왜냐하면 여전히 ‘한옥에 사십니까? 양옥에 사십니까?’라는 질문이 제1과, 제2과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한 한국인에게 그 질문을 하자 그는 웃었다. 대부분 한옥보다는 아파트나 빌라에 산다는 것이다. 나중에 한옥에 사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긴 했으나, 이상하게도 거의 외국인이었다. 심지어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싸우는, 내가 아는 친구들은 다 한국인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한옥이 다시 한국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진 듯하다. 한옥 안에 들어서는 가게, 게스트하우스, 술집, 식당, 치과까지 생겼다. 북촌 한옥마을은 관광객과 답사자들로 와글와글 붐빈다. 하지만 이런 한옥들은 옛날 건축물을 보존하기보다는 대부분 현대 자재를 사용하여 겉만 옛날 모습으로 하고, 안쪽은 거의 양옥인 모던하우스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나는 한옥도 좋아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도 좋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유럽적 건물, 근대 일본식 2층 주택이 보기 좋다. 하지만 많이 남아 있진 않다. 서울의 몇몇 동네를 걷다 보면 한두 채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헐려버렸다. 지난주 서울 정동에서 답사하고 있을 때 구 조선저축은행 두취관사를 철거하는 것을 얼핏 보았다. 그리고 6년 전에 서울 청파동에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마지막 흔적이 없어졌다. 1942∼1945년 3년 동안 호주 영국 미국 군인들이 갇혔고 심지어 일부가 죽은 현장인데도 아무런 비석이나 기념비가 없다.
물론 한국과 한국인이 일제강점기에 겪은 고통 때문에 그 역사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그 건물에서 총독부 관리들이 일을 했고, 그 상점에서 일제 엘리트들이 상품을 샀고, 그 주택에서 한국 땅을 빼앗고 착취한 일본인들이 살았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이제 한국의 역사적 재산이다. 없앤다 하더라도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소위 ‘과거 청산’이란 행위로 역사적 아픔을 지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미군기지도 마찬가지다. 얼마 안 가서 용산기지가 다시 한국 정부에 인수될 텐데, 그곳의 모든 역사적 건물을 철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한국의 역사와 얽힌 건축물이다. 적어도 일부는 보존했으면 한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보다 다양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된다면 행복하고 자연스러울 것 같다. 우리 집 뒷산에서 보는 아파트촌은 꼭 공장지대를 연상시킨다. 건축물이 다양성을 가지려면 그 건축물들이 역사적으로 좋건 나쁘건 간에 그것들을 계속 지키고 인정해줘야 한다. 지금은 이런 건축물의 다양성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그 다양성은 사람들이 서울을 걸어 다닐 수 있게 해주는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