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장관들을 오찬에 초대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이형삼 전문기자
“전후 독일의 경제 재건을 이끈 것은 보수 기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셜 플랜을 통한 경제 개입, 공산당 해산 압력 등 미국의 간섭을 수용하는 친서방 외교를 편 것도 ‘라인강의 기적’에 한몫했지요.
1969년 진보 사민당 최초로 총리에 오른 빌리 브란트가 민족주의에 입각한 동방정책을 추진하자 기민당 일각에서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특히 슐레지엔, 동프로이센 실향민들의 반발이 거셌지요. 그러나 우리처럼 ‘용공’ ‘친북’ 딱지를 붙이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브란트는 2차례의 동·서독 정상회담, 각종 교류·협력 협정,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이뤄냈으나 측근 비서 귄터 기욤이 동독 스파이로 밝혀져 1974년 총리에서 물러납니다(기욤이 동독에서 파견된 것은 맞지만 브란트와 일하면서 그에게 감화돼 서독으로 전향했는데, 동방정책을 우려한 미국이 기욤에 대한 정보를 흘려 서독의 정계 개편과 브란트의 낙마를 유도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독일의 좌우 협조는 콜의 후임인 진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우파적 시각에서 경제 대개혁(해고요건 완화, 실업급여 제한, 연금 지급연령 상향 등)을 단행해 통일 후유증으로 침체된 독일 경제를 되살려낸 데서 절정에 이릅니다. 선거 패배를 무릅쓰고 추진한 슈뢰더의 개혁정책은 보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착실하게 이어받고요. 나라 살리는 일이라면 정권의 이해득실을 떠나 손을 맞잡는 보수와 진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햇볕정책’은 김영삼 정부 초기에 자주 쓰던 말입니다. 그 이전 노태우 정부도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 유화책을 폈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설익고 거칠어 국민의 온전한 지지를 받진 못했지만 ‘종북’ 공세로 상처를 낼 일은 아니었지요.
독일 정치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자민당의 역할입니다. 중도 성향의 자민당은 연정(聯政)으로 보수 기민당과 진보 사민당을 오가면서 부총리 겸 외교장관직을 맡아 외교의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자민당 부총재 한스디트리히 겐셔는 1974년 슈미트 정부부터 콜 정부의 통독 이후인 1992년까지 외교장관 재임). 통일 후엔 부총리 겸 경제장관직을 차지해 경제부흥 전선에서 좌우 협치의 균형추 역할을 했고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서로가 상대방을 상종 못 할 적처럼 몰아붙이는 것 아닐까요. 어떤 경우에도 토론하고 논쟁해서 결론을 내야지요. 노무현의 자결, 박근혜의 투옥…. 이런 비극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건 우리 사회의 대각성뿐입니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