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도쿄 특파원
지난해 11월 17일 미국 뉴욕의 트럼프타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통령 당선 직후의 도널드 트럼프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어리둥절하던 트럼프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그는 “나도 이겼다”며 오른손 엄지를 척 세워 보였다.
2월 11일 산케이신문은 ‘트럼프가 아베에게 마음을 연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2기 내각은 실패 경험을 되씹으며 언론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길들이기에 나섰다. 선호하는 언론과 아닌 언론을 구분하고 ‘특종’을 미끼로 회유했다. 산케이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의 특종이 늘고 아사히신문은 소외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요즘 아침마다 일본 조간신문을 살펴보면 위화감마저 든다. 같은 사안에 대한 보도가 너무나 다르다. 가령 현재 참의원에서 공방 중인 조직적범죄처벌법 개정안은 이름부터 다르다.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신문이 ‘공모죄’라 쓰는 데 반해 요미우리 산케이는 ‘테러 등 준비죄’라 표기한다. 전자는 범죄를 계획 단계에서 처벌할 수 있게 한 법안이 ‘감시사회’를 만든다며 반대하는 입장인 반면 후자는 2020 도쿄 올림픽에 대비해 테러를 막기 위한 법안이란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아사히와 아베의 악연은 지금도 이어진다. 요즘 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리토모학원 문제나 가케학원 특혜 시비는 모두 아사히가 처음 보도했다. 아베 정권의 대응은 오만할 정도의 부인과 무시다. 진상 조사, 국회 증언을 거부하고 고발자를 철저하게 나쁜 사람으로 만들며 “그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날마다 후속 보도가 이어지지만 친정부 신문들은 반대되는 기사만 싣는다. 각기 발행부수 880만, 160만의 요미우리 산케이신문의 충성 경쟁은 일본 언론인들조차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트럼프의 백악관이 ‘대안적 사실’이란 말을 만들어 쓴다지만 일본에서는 친정권 신문들이 ‘포스트 트루스(탈진실)’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 외교의 전통적 두 축인 미국과 일본에서 권력의 폭주와 진실 왜곡이 돋보이는 현실이다. 일본의 경우 현재로선 ‘아베 1강’ 체제가 퍽이나 강고해 보인다. 하지만 일본 국민이 언제까지 권력자의 ‘뻔한 거짓말’을 모른 체해 줄지는 알 수 없다. 미국에 뉴욕타임스가 살아있듯이, 일본에도 아사히신문의 비판정신이 건재한 것에 기대를 걸고 싶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