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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얘들아 미안해. 2002년에 낳아서

입력 | 2017-06-08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큰 그림만 나와 있다.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폐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절대평가 도입, 대학입시 단순화, 대학 서열화 해소, 중학교 중간 및 기말고사 전면 폐지, 고교 의무교육 등인데 하나하나가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이슈들이다.

온갖 교육실험 중3에 집중

암기식 수업과 줄 세우기 교육문화를 없애고 계층 이동 사다리로서의 교육의 기능을 회복하겠다는 문 정부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일각에서 수월성 교육을 내세우며 외고와 자사고를 옹호하지만 이들 학교의 이름값은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는, 선발효과 때문이라는 걸 부인하긴 힘들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바뀌는 것은 교육의 일관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쁜 정책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혼란을 감수하고 개혁하는 게 옳다.

하지만 말이다. 하필이면 교육제도가 몽땅 2018년부터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월드컵 4강의 붉은 정기를 받고 태어난 2002년 말띠생들은 한국 교육의 실험 대상이 되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초등학교에 갈 때는 입학 자격이 3월생에서 1월생부터로 앞당겨지는 혼란이 있었고 중학생이 되자 박근혜 정부의 대표 교육상품인 자유학기 대상자가 되어 시험 없는 한 학기를 보냈다.


그런데 진짜 변화는 시작도 안 했다. 박근혜 정부 때 결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지금까지의 교육과정과는 차원이 다른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광복 후부터 지속되던 문과·이과 구분을 없앤 것이다. 학생들은 고교 1학년에 문·이과가 통합된 7개 공통과목을 배우고 2, 3학년 때는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다.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갖춘 인재를 기른다는 취지에 따라 수업 방식도 암기가 아니라 협력학습, 프로젝트 수업, 주제통합형 토론으로 바뀐다. 이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시기가 내년, 현 중3이 고1이 되는 때다.

이것만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영역인데 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원하는 과목만 듣게 한다는 고교학점제를 공약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전 과목 선택제’를 시행하고 있는 도봉고를 찾아 고교학점제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가운데 정부는 고교학점제에 필요하다며 교사 증원 예산을 추경에 반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고교학점제는 절대평가와 세트다. 학점제하에서는 성취기준을 넘어서면 누구에게나 1등급을 줘야 한다. 변별력 제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입시는 어쩌면 로또가 될 수도 있다. 정부는 고교학점제 도입 시기를 2019년으로 잡고 있는데 이때가 또 현 중3이 고2가 돼서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교육부는 새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이유로 현 중3이 입시를 치를 2021학년도 대학입시 개편안 발표를 당초 7월에서 9월로 미룬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 그리고 정시(수능)로 전형을 단순화하고 사교육을 유발하는 논술전형과 특기자전형은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특기자전형을 기대하고 초등학교부터 길게는 5, 6년간 영재학교 과학고 자사고 입시를 준비해온 학생들이 ‘멘붕’에 빠졌다. 그나마 폐지 여부를 확정해 줘야 일반고를 선택할 수 있다.

입시 불확실성 빨리 없애야

문 정부는 중3 학생과 학부모의 속 타는 심정을 헤아려 교육개혁을 추진하되 시행 시기라도 신속히 밝혀 선택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기 바란다. 사교육을 없애겠다면서 학부모들이 컨설팅업체나 점집에 몰려가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참고로 2002년생은 전국에 46만 명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