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2015년 8월 광복절 70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경제영역을 북한과 대륙으로 확장한다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집권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일단 북한은 민간단체의 방북을 모두 불허하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남측위)’만 허락했다. 얼핏 평양에서 열리는 6·15공동선언 17주년 기념행사에 들러리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남측위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진보연대가 누군가. 2010년 밀입북한 뒤 수많은 친북 발언을 쏟아내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한상렬 목사가 이 단체 상임고문이다. 2012년 북한에서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경애하는 김정은 최고사령관님 만세” 삼창을 외친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을 ‘통일투사’로 칭송하는 곳이 진보연대다. 구속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진보연대 동지들은 제 마음속의 동지들입니다”라고 평가한 곳이다.
이들이 평양에 가면 어떻게 행동할까. 남측위는 통일부에 곧 방북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승인하는 건 큰 모험이다. 첫 방북단이 평양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말과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그 역풍은 고스란히 새 정부가 뒤집어쓴다. 북한 대남부서는 한국 기자들조차 잘 모르는 남측위의 구성까지 다 파악한 듯하다.
한편으로 북한은 다른 민간단체의 방북은 모두 거절한 뒤 6일 노동신문을 통해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 수용보다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먼저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새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북한이 보인 첫 실질적 반응이다.
민간단체들이 보따리 싸들고 우르르 몰려오자 “우릴 비렁뱅이 취급하느냐”는 북한 특유의 자존심도 작용했겠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고약한 ‘시험문제’도 숨어있다.
북한도 새 정부를 한 달간 관찰하며 남북관계를 어떻게 할지 고심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첫 대북접촉 승인을 받은 뒤 열흘이나 지나 답을 내놓은 것을 보면 민간단체 방북을 허용할지도 심사숙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결론은 “문 대통령이 먼저 확실한 의지를 보여줘야 우리도 믿고 마음을 열겠다”는 것으로 내려졌다.
민간교류와 인도적 지원 재개라는 ‘군불’부터 지펴서 점차 남북관계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던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게 됐다.
북한이 보낸 시험문제는 그들의 시각에서는 일리가 있다. 5년마다 정부가 바뀌면서 대북정책이 널뛰기를 하는 남한을 수십 년 지켜본 북한으로선 힘들더라도 집권 첫해에 판을 바꾸어야 남은 4년 동안 큰 걸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한으로선 유엔의 대북제재가 보다 강경해지고 있고, 중국마저 동참하는 마당에 혼자 대열을 이탈하기 어렵다.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리 만무하다.
북한이 제시한 문제를 남한이 풀 수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북한이 제시한 이 문제는 우리가 아닌 북한이 먼저 풀어야 답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민간단체를 거부한다면 정부가 다음 행보로 대북특사를 파견하는 ‘성의’ 정도는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사는 김정은에게 이런 뜻을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열쇠는 지금 당신이 쥐고 있다. 첫 선물은 남쪽이 아닌 북쪽이 먼저 내놓아야 한다. 그러면 확실히 화답할 것이다. 싫다면 우리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