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상업 도시’ 홍콩은 오랫동안 예술에 소홀했다. 1997년 7월 중국에 반환된 뒤 중국 베이징, 상하이와 경쟁해야만 했다. 결국 사람, 돈을 유입할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해결책 중 하나로 ‘예술’을 선택했다. 1999년 주룽(九龍)반도 서쪽 끝 40만 m² 터에 28억 달러(약 3조13600억 원)를 들여 미술관, 공연장 등 17개 문화시설이 들어서는 시주룽 문화지구(WKCD)를 짓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1996년 비영리 전시공간 ‘파라 사이트’를 개설해 서로 활동을 독려했다. 화랑 등 미술계 인사들은 2000년 3만4000개 이상의 작품을 정리한 비영리 단체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미술계 인사들이 교류하는 ‘스프링 워크숍’도 세워졌다. 중국 본토와 달리 미술품 거래에서 면세정책을 유지했다.
그러자 홍콩의 중심 금융지구에서 기업 사무실로 쓰이던 페더빌딩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중국의 ‘큰손’들이 대거 홍콩에 몰렸다. 유럽 화랑들은 홍콩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했다. 2009년 영국계 화랑 벤브라운을 시작으로 서구 화랑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 건물뿐 아니라 센트럴역 일대에는 미국의 페이스, 영국 화이트큐브, 프랑스 페로탱 등 유명 화랑의 지점이 즐비하다. 대표적인 국제미술시장인 스위스의 아트바젤은 2008년 출범한 ‘홍콩 아트페어’를 인수해 2013년부터 ‘아트바젤 홍콩’으로 재탄생시켰다. 아트바젤 홍콩은 출범 5년 만에 동서양 미술품을 함께 거래하는 대표적인 미술품 장터로 급성장했다. 올 3월에만 8만 명이 다녀갔다.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