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대니 돈은 퇴출의 위기에 처해있다. 하지만 감독들은 쉽게 내치지 못하고 있다. 대체 외국인 타자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츠동아DB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쳤지만, 요즘 프로야구 감독들은 ‘보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쳐야할 판이다. 쓸모는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계륵’으로 전락했으나 교체카드를 손쉽게 꺼내지 못하는 외국인타자들 때문이다.
● 효자용병이었던 외국인타자
1998년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뒤 한국땅을 밟은 외국인선수들은 프로야구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웨이트트레이닝의 중요성을 알렸고 타격 기술, 구종과 같은 선진야구를 전파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야구강국으로 거듭났다. 리그 수준이 올라가면서 웬만한 외인들은 와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아직까지 외국인투수에 대한 의존도는 높지만 외국인타자는 실력이 아주 빼어나지 않으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는 압도적인 외국인타자가 없다. kt 조니 모넬은 10개 구단 외국인타자 중 가장 먼저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갔다. LG 루이스 히메네스는 부진을 거듭하다가 부상으로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퇴출과 생존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대니 돈도 1군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1할대 타율에 경기출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LG 히메네스. 스포츠동아DB
● 이제는 계륵으로까지 전락
‘계륵’으로 전락한 외국인타자들을 보는 감독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교체카드를 꺼내고 싶지만 로맥처럼 좋은 타자들을 데려온다는 보장이 없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 kt는 모넬을 퇴출했지만 새로운 인물을 찾지 못해 2주 넘게 외인 한 자리가 공석이다. 넥센의 경우 대니 돈을 내보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팀 사정이 있다. 션 오설리반을 제이크 브리검으로 바꾸면서 2장의 교체카드 중 한 장을 썼는데, 앤디 밴헤켄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마지막 한 장을 외국인타자 교체에 쓰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두산 김태형 감독도 “외국인타자는 참 어려운 문제”라고 고개를 저었다. 김 감독은 “외국인투수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투구영상을 보면서 구위, 구종, 제구력 등을 평가할 수 있고 타자들과의 타이밍 싸움을 보면서 ‘통한다’, ‘그러지 못한다’라는 판단이 서는데 외국인타자는 다르다”며 “커리어를 보면 분명히 잘 할 것 같은데 막상 시즌 돌입하면 예상을 벗어나는 타자들이 많다. 영상을 많이 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SK 루크 스캇이 대표적이다. 스캇은 플로리다 스프링캠프만 해도 정말 최고의 타자였는데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전 SK 스캇.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제2의 에반스 꿈꾸는 외인들,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독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며 교체보다 동행하는 쪽을 선택한다. 올 시즌만 해도 롯데 앤디 번즈, KIA 로저 버나디나, 삼성 다린 러프 등이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감독들은 인내하며 충분한 적응시간을 줬다. 이는 지난해 지독한 부진에 시달리다가 2군에 다녀온 뒤 제 모습을 되찾은 두산 닉 에반스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고의 열매는 다행히 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러프, 번즈, 버나디나 모두 팀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러프를 기다려준 삼성 김한수 감독은 “러프를 교체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타격폼을 조금 수정하긴 했지만 커리어가 굉장히 좋은 타자였고, 시즌이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급한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컨디션이 올라오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다시 1군으로 올라왔을 때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면 그때는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LG도 동병상련이다. 내부적으로 부진과 부상으로 허덕이는 히메네스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은 모아졌다. 그러나 LG 양상문 감독은 “히메네스의 치료를 지켜보며 새로운 선수도 찾겠다. 순리대로 가려고 한다”는 말로 여지를 남겼다. 현재로서는 교체도, 동행도 결정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은 한 마디였다.
두산 에반스-삼성 러프(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잠실 |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