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에 대한 충성맹세는 고대부터 관습법으로 대략 12세 이상 모든 사람에게 요구해 왔다고 한다. 배신자나 불충세력을 가려내기 위한 일종의 끊임없는 테스트였다. 중세 봉건시대에 가신이 주군 앞에 무릎을 꿇고 다짐하는 충성서약도, 야쿠자 같은 조직폭력배에서 한 잔의 술을 나눠 마시거나 심지어 손가락까지 자르는 광적인 의식도 결국 주군이나 보스에 대한 배신을 막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로 표현되는 충성의 대상은 국기가 상징하는 국가와 국민, 나아가 국가 이념이다.
▷“나는 충성(loyalty)을 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백악관에서 제임스 코미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러시아 내통 의혹 사건의 수사를 중단하라며 사실상 충성맹세를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코미의 답은 이랬다. “대통령은 저로부터 항상 정직함(honesty)을 얻을 겁니다.” 트럼프 개인의 사복(私僕)이 아닌, 대통령에 대한 공복(公僕)으로서 나름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거듭 ‘정직한 충성’을 요구했다고 코미는 증언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