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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는 거짓말

입력 | 2017-06-10 03:00:00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마이클 만 글·톰 톨스 그림/정태영 옮김/244쪽·1만3000원·미래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강연 자료를 바탕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를 경고한 영화 ‘불편한 진실’(2006년).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는 등 화제를 모으자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고어의 이미지 훼손에 전력을 기울여 성공을 거뒀다. 사진 출처 screenrant.com

“파리기후변화협약은 미국에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하며 내놓은 말. 핵심 단어는 ‘이익’이다.

지난해 11월 발효된 파리협약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전보다 섭씨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 모인 195개국 대표들이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며 합의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세계 2위 탄소배출국 대통령으로서 자국의 굴뚝산업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 합의를 내팽개쳤다. 세계기상기구(WMO)는 미국의 협약 탈퇴로 인해 이번 세기 안에 지구 평균 기온이 0.3도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0.3도쯤이야’라는 사람이 적잖을 거다. 이 책은 그런 안이한 반응이 얼마나 정신 나간 태도인지 조목조목 비판한다. 원제는 ‘The Madhouse Effect(정신병원의 악영향)’. 공론의 장에서 기후과학의 증거를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양상이 정신병원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글쓴이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대기과학과 교수다. 과거 1000년간 지구 온도의 급격한 상승 추이를 보여주는 ‘하키 스틱 곡선’을 1999년 발표해 학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딱딱한 과학서적 아닐까’ 하고 망설이는 독자의 눈을 붙드는 건 1990년 퓰리처상을 받은 워싱턴포스트 시사만평가가 곳곳에 그려 넣은 신랄한 만평이다. 두 번째 장(章) 말미의 온도계 삽화를 보면 ‘0.3도쯤이야’라는 무신경한 말을 할 수 없다. 이미 산업혁명 전보다 1도 상승한 현재 지구의 평균 기온이 앞으로 1도 더 오르면 생물 종(種) 25%가 멸종한다.

“지구는 우리의 집이다. 지구 온난화란 그 집에 불이 났다는 거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는 증거가 발견되고 경보음이 누차 울렸는데도 기후변화 관련 정책은 마비 상태다. 무지의 소치나 반신반의하는 태도 탓도 있지만 그릇된 정보를 고의로 퍼뜨리는 세력 탓이 크다.”

압도적 다수의 시민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해 왔음에도 정치인들이 화석연료를 둘러싼 기업과 이익집단의 명령에 순종하며 자신들을 뽑아준 대중의 장기적 이익을 외면하고 있기에, 사회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과학자들이 나섰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정치인들은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과학자들끼리 100% 의견 일치가 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다 간혹 과거 십수 년 새 특정한 몇 해의 기온만을 골라 ‘지구 온난화는 멈췄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나오면 큰 소리로 찬성하고 나선다.”

기후과학의 기본 개념은 간단하고 한결같은 두 가지 사실을 바탕에 둔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열을 가둔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대기 중에 갈수록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보태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세력이 지엽적 사안을 따지고 들면서 이 기본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려 시도해 왔다”고 비판한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그때 축소했다면 지금은 짐이 많이 줄었을 거다. 하지만 인류는 과학을 무시했고 합리적 선택을 외면했다. 우리는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시간은 이제 우리 편이 아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