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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 City]낡음과 번화함의 조화, 우리시대 풍경

입력 | 2017-06-12 03:00:00

<7> 강풀 웹툰 속 서울 강동구




11일 서울 강동구 강풀만화거리 초입의 벽화 ‘당신의 모든 순간’ 앞을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강동구는 2013년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 시리즈 장면들을 성내2동과 천호동의 낡은 골목에 벽화로 재구성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만화가 강풀의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강동구 주민들은 “어디서 많이 본 곳인데!”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집 앞 골목, 고등학교, 매일 지나치는 상가가 작품에 그대로 옮겨지곤 한다.

강풀 연재작 ‘브릿지’의 등장인물 박자기. 머리맡에 강동구 관내도를 두고 매일 꿈에서 예감하는 참사장면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3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 중인 ‘브릿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암사역 사거리에서는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김영탁이 싱크홀에 빠질 뻔한 중학생을 구하고, 강동 그린웨이 캠핑장 앞 터널에서는 빠른 신체 회복력을 가진 장희수가 혈투를 벌인다. 미래에 일어날 참사를 내다보는 박자기의 침대 머리맡에는 아예 강동구 관내도가 붙어 있다. 국가정보원 5차장실(국정원에 5차장은 없다)은 강동구청장 집무실을 본떠 그렸다.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 묘사 덕에 묘한 균형이 생겨난다.

두 살 때부터 강동구에 살았다는 강풀의 작품 대부분은 강동구의 곳곳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 웬만한 경찰서는 모두 강동경찰서다. 작품 ‘순정만화’의 배경은 고덕동이며, ‘이웃사람’에는 명일동의 건물과 골목이 간판만 바꿔 달고 등장한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이 많은 성내동과 암사동 좁은 골목은 각자 존재감을 드러내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강동구의 이런 특색은 낡은 모습과 번화함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기름진 한강 유역에 자리한 강동구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주로 농업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서울 아시아경기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 주도로 국제 수준의 체육시설과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외곽부터 잠식해 들어온 아파트단지 및 고층건물과 내부에 있는 기존의 오래된 주택가가 맞닿아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묘하다.

강동구는 강풀이 인기를 얻자 2013년부터 성내2동과 천호3동에 ‘강풀만화거리’를 만들었다. 비좁은 골목과 20∼30년 된 주택이 대부분이던 성내2동은 2006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경기침체 등으로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2013년 주민참여형 주거환경관리사업지역으로 전환했다. 어떻게 동네를 바꿀 건지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골목이라도 쾌적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컸다. 이를 반영해 벽화사업을 시작했다. 강풀도 홍보 차원에서 당시 연재를 준비하던 ‘마녀’의 배경을 성내동으로 설정했다. 2015년 작품 ‘무빙’의 주요 배경이 된 선사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강풀의 ‘순정만화’ 시리즈를 주제로 한 벽화 52개가 만들어졌다.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처럼 공공예술을 가미해 재단장한 지역 중에는 거주민과 관광객이 갈등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강풀만화거리는 아직 관련 민원이 한 건도 없다. 강동구 벽화해설사 유시찬 씨(55)는 “주민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됐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조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네 토박이인 이발사 김영오 씨(70)는 “칙칙하던 동네에 만화거리가 생기면서 생기가 돌고 주민도 자부심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강동구는 강풀만화거리를 2월 문 연 ‘승룡이네 집’, 주꾸미 골목 같은 지역 명소와 연계해 투어코스를 선보였다. 투어 3일 전까지 강동구청 도시디자인과(02-3425-6130)로 신청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눈썰미 좋은 만화광이라면 여기뿐 아니라 강동구 어디를 가든 강풀 작품 속 ‘그곳’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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