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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박용완]좋아한다는 음악가 따로 평소 즐겨듣는 노래 따로

입력 | 2017-06-12 03:00:00


취향의 탄생 톰 밴더빌트 지음·토네이도 2016년

박용완 국립극장 홍보팀장·전 월간 객석 편집장

“어떤 음악 좋아해요?”

요즘 젊은 남녀도 처음 만나 이런 질문을 주고받는지 모르겠다. 남편을 처음 만난 날 나는 그에게 좋아하는 음악과 책, 영화를 꼬치꼬치 물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화폐자본이 아닌 문화자본이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규정한다. 그중 음악은 계급을 가장 명확히 분류하는 기준”이라고 했다. 취향을 통해 상대의 자본력을 가늠할 수 있다니. 낯선 이의 음악 취향을 묻는 건 통장 잔액을 묻는 것과 같다는 뜻일까.

수많은 선택지 중 왜 이걸 선택했을까. 미국 정보기술(IT) 전문지 ‘와이어드’ 객원기자인 저자는 여러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취향이라는 정글을 살폈다. 그런데 종종 이런 문장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취향이 만들어진 원인을 정확하게 찾기는 어렵다.”

한국어판 제목보다는 원서 제목이 내용에 상응한다. ‘You May Also Like(당신도 좋아할 겁니다).’ 소셜미디어나 영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늘 마주하는 메시지다. 좋아할 테니까 한번 보세요, 들으세요, 그리고 사세요. 모니터 위에 수시로 뜨는 소비 권유는 언젠가 내가 드러낸 취향에 대한 마케터들의 회신이다.

저자는 취향에 대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사용자가 애플뮤직 측에 밝힌 ‘좋아하는 음악가’ 목록과 실제로 즐겨 듣는 음악이 대체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까닭에 콘텐츠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는 사람들의 말이 아닌 행동을 분석해 진짜 취향을 파악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자신이라는 거울 앞에서조차 스스로의 취향을 일부 왜곡한다. 날것의 기호 위에 환상이라는 향신료를 조금 뿌려 완성된 것이 취향이라면, 취향을 활용하려 하는 기업들은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할 과제를 풀고자 하는 셈이다.

얽히고설킨 취향의 갈등 이야기를 그린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1999년). 동아일보DB

“누군가의 계급을 확신시키고 정확히 분류하는 건 음악”이라는 부르디외의 주장은 이 책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다만 하나의 명제에 관한 여러 현상이 세상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음을 일러준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취향의 계층은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지만, 1980년대부터 이들이 컨트리나 블루스를 좋아하게 됐다는 연구결과가 대표적이다.

돈 많고 시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오페라를 즐길 거라는 선입견은 한국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막상 오페라극장에 가보면 업무를 마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헐레벌떡 달려온 젊은 직장인들이 많다.

문화자본이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한다는 주장, 취향의 형성이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취향’과 ‘계층’의 상관관계를 새롭게 인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상품에 대한 진입장벽이 한없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애플뮤직이 추천한 이자벨레 파우스트의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며 퇴근길 지하철에 오르는 이도, 집에 와서 ‘프로듀스101’을 시청하는 이도 하나의 ‘나’다.
 
박용완 국립극장 홍보팀장·전 월간 객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