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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1956년 ‘정읍 환표사건’ 세상에 알린 박재표씨

입력 | 2017-06-12 03:00:00

자유당 시절 투표 바꿔치기 폭로한 ‘正義의 순경’




故 박재표 씨

1956년 8·13지방선거 당시 자유당이 저지른 ‘환표(換票)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박재표 전 동아일보 차장이 11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1932년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무렵 경찰에 투신해 24세이던 1956년 당시 전북 정읍군 소성(所聲)지서에서 순경으로 근무했다. 도의원 선거 당일인 8월 13일에는 소성투표소에서 경비 임무를 맡던 평범한 경찰이었다.

하지만 선거일 벌어진 사건은 고인의 인생을 뒤바꿨다. 선거 직후 투표함을 개표소로 이동하던 중 고인은 ‘표 바꿔치기’, 즉 환표를 목격했다. 투표함을 호송하던 경찰관들이 당시 여당인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야당 후보에게 투표한 표를 여당 후보 표로 바꾸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 같은 사건을 목격한 고인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경찰 상사들의 눈을 피해 25일 전북 전주로 ‘탈출’을 감행했다. 전주에서 뒤바뀐 사표(死票) 등을 증거물로 들고 서울로 상경해 27일 세종로 동아일보사를 찾았다. 고인은 경찰들이 자행한 환표 사실을 기자에게 알렸다. 고인이 폭로한 내용은 동아일보 1956년 8월 29일자를 통해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오늘날 ‘정읍 환표사건’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환표 사실을 폭로한 고인에 대해 이틀 뒤인 31일 경찰은 체포령을 내렸다. 고인은 직무유기, 근무지이탈 혐의 등으로 전주시에서 체포됐다. 이후 환표사건은 ‘정읍 환표 날조 폭로사건’으로 경찰에 의해 조작됐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정읍지역 간부들은 배후 조종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고인의 부모형제 또한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당시 경찰과 농림부에서 근무하던 고인의 형제들은 강제로 근무지에서 파면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고인의 조카들 또한 학비를 조달하기 어려웠다. 고인과 형제들은 생활면에서도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를 가나 사상이 불온하다고 감시를 하는 통에 장사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2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으며 고초를 치렀다. 그러나 고인은 1959년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폭로 내용이 허위가 아니었음을 인정받았고, 1960년 4·19혁명 직후 경찰에 복직해 명예를 되찾았다.

1956년 8·13지방선거에서 자유당이 저지른 ‘환표(換票)사건’을 양심선언했다고 경찰에서 파면당한 박재표 전 동아일보 차장이 1960년 4·19혁명 후 복직했다는 본보 1960년 12월 4일자 기사.

1960년 12월 4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고인은 당시 상황에 대해 “형제야 한 탯줄이니 나 때문에 받는 학대를 용서해줬지만 10여 명이나 되는 조카들한테는 미안하기 그지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기사는 고인에 대해 “검은 정복에 단정히 표찰을 달고 금테두리 정모를 쓴 28세의 박 경위의 자태는 진정한 민중의 공복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한결 믿음직스러웠다”고 표현했다.

같은 해 11월 경위로 승진한 고인은 이후 종로경찰서 등에서 근무하다 제복을 벗었다. 이후 양심선언 당시 인연을 맺은 동아일보에 입사해 경비원 일을 하다 정식으로 채용돼 자재부 등에서 근무한 뒤 1990년 차장(부장대우)으로 정년퇴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해진 씨(코레일네트웍스 근무), 용 씨(자영업), 옥 씨(자영업), 손녀 선영 씨(CBS PD), 현선 씨(삼성출판사 연구원) 등이 있다. 빈소는 충남 천안의료원, 발인은 13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남 천안추모공원. 041-570-7266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