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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전승민]脫원전의 과제

입력 | 2017-06-12 03:00:00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자력발전’이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노후 원전 폐쇄 등을 대선 공약으로 포함했다. 실제로 시행에도 들어갔다. 1978년 건설돼 40년간 전력을 생산해 왔던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도 19일부터 가동을 멈춘다.

이 흐름을 두고 원자력 전문가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장점이 많은 원전을 무조건 제재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학회,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한국원자력산업회 등 3대 학회를 중심으로 8일 서울대 시진핑홀에서 ‘원자력 안전과 편익 대국민 설명서’를 발표하고,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력은 싸고, 안전하며,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지 않아 친환경적이라고 강조했다. 외화 획득과 고용 창출이 가능해 경제성이 크다는 주장도 붙였다.

1일에는 에너지학과 교수들이 “소수의 비전문가가 속전속결로 내놓은 조치는 원자력계 모두의 사기와 공든 탑을 허물고, 국가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원자력 학계의 이런 주장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운전정지, 불량부품 공급 등으로 불안감이 높아진 국민은 원자력에 대해 곱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설계상 안전해도 운영하는 사람을 믿기 어렵다”며 우려를 거두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원자력을 제외하면 가장 발전 단가가 낮고, 대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석탄화력발전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발생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도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기의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 석탄화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발생이 적은 천연가스 발전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있지만, 대량의 가스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방안부터 확보해야 한다. 단가가 높아 전기요금의 상승도 예상된다.

미래 에너지로 꼽히는 태양광, 풍력, 지열, 조력 등도 마찬가지다. 오염물질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발전효율이나 지속적인 전력생산 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전력 사용량이 공급량을 일순간이라도 초과하면 발생하는 ‘블랙아웃’을 고려한다면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시스템을 설계하긴 무리가 크다. 생산한 전력을 모아두고 필요할 때 공급하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도 있지만 이 기술도 아직 현실과 거리가 있다. 현재 기술로는 빌딩 하나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배터리로 가득 찬 빌딩을 추가로 지어야 한다.

원자력에 대해 국민 다수가 우려를 표한다면,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고려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일견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다양한 에너지 시스템의 장단점을 두루 고려한, 안전하고 효율이 높은 최적의 시스템을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연구하는 일이다. 원자력발전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화력발전은 미세먼지 발생을 우려해 중단한다면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도입해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할까. 거기에 따른 대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정부는 무엇보다 국가의 안정적 운영을 우선시해야 한다. 전력이 없는 사회는 중세와 다름 아니다. 주유소와 정유공장이 정지한다면 휘발유로 움직이는 자동차조차 다닐 수 없다. 에너지 시스템의 수술에 앞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국내 산업과 사회구조에 맞춘 가장 과학적인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고려하는 일이다. 명백하고 투명한 연구 결과가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 역시 한층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