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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호모부커스]책과 스포츠

입력 | 2017-06-12 03:00:00


표정훈 출판평론가

월드컵 축구대회나 올림픽 경기대회 같은 스포츠 행사가 열리면 책을 향하던 눈길도 자꾸 TV 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실제로 도서 매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동적인 스포츠와 정적인 독서는 무관한 것에서 더 나아가 상극 관계 같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나이키의 공동 창업자이자 전설적인 육상코치 빌 보워먼(1911∼1999)은 1960년대 초 세 페이지 분량의 조깅 매뉴얼을 작성, 배포했다. 이 매뉴얼이 큰 주목을 받자 보워먼은 심장병 전문의와 함께 90페이지 분량의 책자 ‘조깅’(1966년)을 출간했다. 이 책은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미국에 조깅 붐을 일으켰고 이듬해 127페이지 분량의 개정판이 나왔다. 책을 통해 미국 생활체육의 새로운 분야와 시대가 열렸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망중한은 독서와 음악 감상으로 채워진다. 전지훈련을 떠날 때 그의 가방에는 책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별도로 큰 박스에 넣어 갔다. 소설과 역사책을 주로 읽으며 심리에 관한 책도 자주 읽는 편이다. 히딩크 특유의 리더십과 화법(話法)을 독서가 뒷받침한다.

이만수 전 프로야구 SK 감독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독서로 푼다. 읽을 만한 에세이집이 나오면 어김없이 챙겨 읽는다. 2013년 시즌 개막 전 스포츠 정신의학 전문의가 쓴 심리교양서 ‘마음속에는 괴물이 산다’를 선수단에 선물했다. 그해 시즌 7월에는 박찬호 선수의 자전 에세이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90권을 선물했다. 코치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른 내용의 메시지를 책에 적어 선물하는 독서 리더십을 펼쳤다.

스포츠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관련 도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스포츠 기자 출신 국흥주가 쓴 ‘운명의 9회말’(1979년)이다. 광복 이후 야구계 이야기, 고교 야구에 얽힌 일화들, 미국 야구 초기에 관한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새가 좌우 양 날개로 난다면 사람에게는 독서와 운동이라는 양 날개가 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사람은 달리고 읽는다.

“근래 조선 청년 간에 독서의 열과 스포츠의 열이 왕성하여 가는 것은 경하할 현상이다. 학문과 체육은 실로 문화의 원천이다. 고대의 지용(知勇)이라는 말은 현대어의 독서와 스포츠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1931년 9월 24일자 동아일보 사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