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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진심을 담은 귀한 선물

입력 | 2017-06-13 03:00:00


에두아르 마네, ‘레몬’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인상주의 미술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대화되어가는 프랑스 사회상에 주목했지요. 그렇다고 도회적 삶과 새롭게 출현한 군중만 그린 것은 아닙니다. 정물화 80여 점도 남겼어요. 화가 작품 전체에서 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수치랍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미술은 장르별 위계가 확고했습니다. 역사화는 도덕적, 종교적 교훈으로 인간 정신을 드높이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큰 지적 장르로 존중되었습니다. 반면 정물화는 사물의 겉모습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하찮은 장르로 간주되었지요. 하지만 화가가 활동할 당시 정물화의 사회적 위상은 크게 높아진 상태였습니다. 자연과 미의 본질을 고요한 사물의 세계에 담아냈던 선배 정물화가 샤르댕의 역할이 컸지요.

미술가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 같은 화제작을 쏟아내던 1860년대 중후반 처음 정물화에 집중했습니다. “화가는 꽃, 과일, 구름만으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정물화의 대가가 되고 싶다.” 정물화를 회화의 시금석으로 여겼던 화가는 꽃과 과일을 단독으로 그렸지요. 다른 장르 그림에 배달받은 꽃다발과 탁자 위 책 같은 정물을 등장시켜 효과적인 예술 발언도 이어갔어요.

생의 마지막 시기, 화가는 다시 정물화에 몰입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술적 야심보다 현실적 판단이었습니다. 관절염을 비롯해 각종 질병으로 작업이 어려워진 미술가는 일종의 대안으로 소규모 정물화를 선택했지요. 작은 공책 크기 ‘레몬’도 이 시기 완성작입니다. 화가는 강렬한 명암 대비와 미묘한 색채 사용으로 그림 속 정물에 사실감을 부여했습니다. 동시에 역동적 붓질과 대담한 구성으로 먹음직스러운 과일에 주목할 만한 존재감을 더했어요.

점심시간, 아담한 강의실에 20여 명이 모였습니다. 후배들이 퇴임을 앞둔 교수님 두 분을 위해 마련한 조촐한 자리였지요. 이 특별한 순간을 어떤 그림에 비유할 수 있을까. 떠나는 분들과 남는 이들 사이에 아쉬운 마음과 따뜻한 격려가 오가는 동안 머릿속이 분주했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던 노년의 화가가 지인들에게 한 알씩 즐겨 선물했다는 레몬의 의미 때문이었을까요. 작은 화면을 꽉 채운 투박한 진솔함 때문이었을까요. 진심과 온기로 겉치레와 산해진미의 헛헛함을 걷어낸 자리가 화가의 정물화와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았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