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한번은 도둑 떼가 칼을 들고 사촌 아우의 집에 쳐들어왔다. 아무리 뒤져도 돈이 나오지 않자 물러가다가 휙 돌아보며 말하기를 “집이 왜 이렇게 크냐? 좀 줄여야겠다” 하였다. 어떤 도둑은 밤에 술이 취해 족제(族弟)의 집에 들어와 돈을 뒤지다가 잠이 들었는데, 자다가 자리에 가득 토악질을 해 놓으니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일어나서 사과하기를 “술에 취해서 예의를 잃고 주인에게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 부디 주인께서는 인심을 잃지 마십시오” 하였다. 또 어떤 도둑은 노름하는 사람들에게 “무익한 짓이다. 하지 마라” 하였다.
도둑이란 사람을 잘 선도하는 자가 아니며, 그 마음씨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말을 보면 사람을 사랑하고 선도하는 자라 할지라도 이보다 더 잘할 수가 없다. 도둑의 말이라 하여 이를 다 버리지 말고 그중 쓸 만한 것을 고른다면, 이 또한 옥돌을 다듬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도둑인 주제에 이처럼 실례를 범한 것을 뉘우치기도 하고 노름을 미워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 양심이 아직 다 사라진 것은 아니라 하겠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들에게 예와 의로 가르쳐서 권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쫓기는 일이 없도록 해 준다면, 이들 또한 바른 도리를 지키고 실천할 수 있는 자들이 될 것이다(上之人有以禮義之敎申之, 而無迫於飢寒, 亦直道而行者也歟).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