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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 무토 대사의 책을 반박한다

입력 | 2017-06-13 03:00:00


심규선 고문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69) 전 주한 일본대사가 얼마 전에 펴낸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덮으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한국을 걱정해주는 것 같았지만, 그 걱정에 가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무토 씨는 40년에 걸친 직업 외교관 생활 중 대사(2010~2012년)를 포함해 12년 동안이나 한국에서 일한 데다 한국어에도 능통해 자신의 한국관이나 한국 비판이 설득력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에 낸 책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무토 씨는 직업 외교관의 명예와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이 주재했던 나라를 비판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 비판의 중심에 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이 편향돼 있다는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 책에 쓴 것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배려하느냐에 따라 책이 주는 인상은 180도 달라진다. 그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판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토 씨는 앞서 발간한 책에서 나름의 식견과 생각을 갖고 한국에 쓴 소리를 해왔는데도 한국 미디어는 크게 취급하지 않았다며, 솔직하고 자유로운 반론이나 비판을 받고 싶었는데 조금은 아쉬웠다고 이번 책에 썼다. 그가 말하는 예전 책은 ‘일한 대립의 진상(日韓對立の眞相’(2015년 5월)과 ‘한국의 큰 오산(韓國の大誤算)’(2016년 4월)이다.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 일본 대사가 보름 전에 펴낸 책의 표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제목 밑에 붉은 글씨로 “어째서 지금 문재인인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카피가 불어 있다. 왼쪽 구석의 흰 글씨는 “북한에 바짝 다가서고, 반일을 외치는 대통령에게, 일본은 강한 결의로 임할 수밖에 없다”라는 뜻이다.

이번 책이 나온 이후, 한국에서는 여러 매체가 기사와 칼럼으로 그를 비판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며칠 전 그가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미디어의 비판에 대해 “반발은 당연히 예상했던 것이다. 오히려 나의 한국비판이 마침내 상대방에게 전해져 기뻐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읽고 생각을 바꾸었다. “반발을 예상했다”고 하면 상당히 의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그의 주장까지 옳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도 ‘그를 기쁘게 해주는’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예전 책보다는 관심을 끌었으니 이번에는 덜 섭섭한지도 그에게 묻고 싶다(1년에 한권씩 책을 내는 그가 이번에 재미를 붙여 내년에 더 자극적인 책을 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무토 씨는 같은 인터뷰에서 “‘혐한(嫌韓)’의 입장으로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이 책에 쓰여 있는 대로 되지 않고, 한국인이 ‘한국에서 살고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이가 쥐 생각 해주는’ 이 발언은 시어머니를 말리는 시누이가 종종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책이 혐한은 아니라고 했다. 동의한다. 이 책은 혐한보다 일본인의 우월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다. 무토 씨가 솔직하고 자유로운 반론과 비판을 원한다고 했으니, 몇 가지 점에 대해 솔직하게 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토 씨는 이 책에서 한국인이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여러 차례에 걸쳐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든 안하든 이런 표현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무례다. 자신의 의견을 한두 차례 표현할 수는 있으나 주관적인 견해를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양 강변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싸움을 거는 것이다. 한국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보다 인기가 낮은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베 총리를 선택한 일본과 일본인을 무토 씨처럼 비판한 한국 언론이나 지식인은 내 기억에는 없다.

책의 서장(序章)은 ‘문재인 크라이시스가 일한을 덮친다!’, 1장은 ‘최악의 대통령 문재인은 누구인가’이다. 문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나 됐다고 ‘문재인 크라이시스(위기)’이며 ‘최악의 대통령’인가. 버젓이 그런 제목을 다는 배짱이 놀랍다. 전형적인 책 선전 수법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딱 1년 만인 2007년 9월 건강을 이유로 갑자기 총리 자리를 내던지고 도망치듯 물러났다. 그런 아베 총리가 5년 만인 2012년 말에 컴백할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처럼 장수할 것이라고 예측한 일본인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는 예측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무토 씨는 이렇게도 썼다.

“촛불에 불을 붙이고 탄핵까지 달려가는 한국인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가 하나가 되어 그저 공만을 쫓아가는 ‘어린이 축구팀’을 떠올린다.”

“북한의 위협보다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우선하고, 분노와 불만에 따라 문재인 정권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한국인이 만석(萬石)의 눈물을 삼키며 깨닫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인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을 너무 쉽게 쫓아냈다고 하면서 문 대통령도 똑같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명백한 이중잣대다. 더욱이 촛불집회를 비판하며 북한의 공작원이 관여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나야말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한국인들 사이에도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비판적 의견도 많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을 알든 모르든, 칼로 무 베듯 촛불집회의 의미를 잘라버릴 수 있을 만큼 간단한 현상이 아니다. 더욱이 일본에서 박 전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 등 끊임없이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판한다고 해서 ‘여학생 고자질 외교’를 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일본에게 ‘위험한’(일본이 그렇게 생각하는) 문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박 대통령을 갑자기 희생양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골계다. 한국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룹이 존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는 추정과 예단, 예측이 많다. ‘~한다면’ ‘일 것이다’ ‘생각된다’는 표현이 그 증거다. 무토 씨가 무리를 해가며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는 문 대통령이 친북 성향이기 때문이고, 그 친북 성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참모를 하면서 굳어졌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의 친북 성향과 안보관은 한국인들 중에서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도 쟁점이 될 것이고,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무토 씨의 논리적 비약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무토 씨는 한국 대사로 근무하던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후보를 부산에서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한일관계의 현상(現狀)을 설명하고, 자원개발과 인프라 협력, 한일 FTA 등을 통한 윈윈관계 구축 가능성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 후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일본은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만 했다고 한다. 무토 씨는 이를 두고 “문재인에게는 근본적으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나 문제의식이 없는 듯하다, 고 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논리의 비약이다(무토 씨와 나는 딱 한번이 아니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으니 ‘서로 아는 사이’라고 소개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런 대목도 나온다.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현재의 사고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에 대한 의식이나 이해는 역사문제, 영토문제에 관한 것밖에 없고, 다음은 북한관계를 가장 중시하는 가운데, (일본은) 그 요인으로서의 존재밖에 없다. 아니 그보다 외교, 안전보장의 축이 일본은커녕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북한인 것이다.”

그러면서 장황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을 소개한다. 대부분 북한에 호의적인 발언들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정치가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나는 인권변호사로서의 자질이나 경력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다만, 문재인의 정치가로서의,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노무현의 재래(再來)와 유지를 이어받는 자로서 같은 정책을 채용한다면 이미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무토 씨는 문 대통령을 노 전 대통령의 아바타라고 단정하고 북한에 유화적인 정책을 쓸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예로 사드 배치 갈등, 주적(主敵) 논쟁,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 등을 예시했다. 북한과 안보 문제에서 노 전 대통령은 실패했고, 문 대통령은 그의 아바타이니 역시 실패할 것이라는 논리다(기자가 중요한 인물의 정책을 예측하며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면 절대로 게재될 수 없다).

그런데 경제 분야에서는 거꾸로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아바타가 아닌 것이 문제가 된다.

“노무현 정권에서 비서실장을 지냈기에 경제의 기초 정도는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경제 음치’는 고치지 못한 것 같다.”

명예훼손에 가까운 험담이다.

그는 책의 후기에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판타지의 세계에 살고 있고, 경제를 모르면서 비현실적인 정책을 약속하고, 외교도 안전보장도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는 정권을, 한국인은 택했다.”

이런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무토 씨는 북한의 핵문제가 ‘4월의 위기’로 표현될 만큼 급박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과거의 친북, 포용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로 논리를 전개한다. 한반도와 문 대통령을 둘러싼 국제 환경이 10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고, 따라서 예전의 카드를 쓰는 것은 힘들다는 점도 짚어주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상황변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베 총리가 과거에 말한 역사수정주의와 국수주의, 우경화 관련 발언만을 떼어내서, 그는 자신의 발언을 반드시 관철시키려 할 것이고 결국은 실패할 것이니, 그런 인물을 선택한 일본인은 잘못했다고 비판할 수 있는가. 또한 아베 총리는 경제 전문가가 아닌데도 아베노믹스의 기치를 올리고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지금의 민진당)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그 또한 일본의 선택이자 역사다. 다른 나라에서 ‘절대로 태어나서는 안 될 정권’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누구나 정치가의 앞날을 예측할 수는 있다. 문 대통령이 무토 씨의 예상대로 한국과 주변국에 걱정을 끼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무리하게 점을 쳐서도 안 된다. 그런데 무토 씨는 점을 치고 있고, 나오는 점괘마다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고 있다. 나는 그의 예측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 책 2장의 제목은 ‘집요한 반일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이다. 명백한 과장이다. 한일 간에는 2015년 12월 28일의 위안부합의의 이행여부를 둘러싸고 갈등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가 광풍의 사례로 든 것은 흔들리는 위안부 합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활동, 강제징용자에 대한 판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향방 정도다. 예전부터 부상해 있던 문제들이다. 광풍이라고 할 게 없다.

또 하나 언급해두고 싶은 것은 조직적 반일은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단언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근무한 무토 씨라면 동의할 것이다. 30년, 20년 전과 비해 대규모 반일시위는 사라진지 오래고, 한일관계가 삐걱댄다고 수학여행이나 지자체 교류를 취소하는 일도 없다. 일본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음식점도, 일본인의 탑승을 거절하는 택시도 찾기 힘들다.

인구가 한국의 2.5배인 일본에서 지난해 한국에 온 관광객이 230만 명이었지만, 한국에서 일본으로 간 관광객은 그 배가 넘은 509만 명이었다. 올해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은 처음으로 6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일본에서 한국에 오는 관광객은 270만 명으로 예상). 한국이 이렇게 변하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혐한류 서적이 판을 치고, 한국과 재일동포를 비난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됐다. 지금은 한국의 반일 광풍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 일본의 반한과 혐한 광풍을 걱정할 때다.

언론만 해도 그렇다. 한국 언론은 예전의 스테레오타입의 일본 비판에서 벗어나 점차 객관성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한국 언론기관의 도쿄특파원들이 적어도 주간지의 혐한기사는 쓰지 않기로 3,4년 전에 신사협정을 맺은 것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이다. 그에 비해, 일본 언론은 오히려 예전의 다양성과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이 엷어지면서 할 것은 하지 않고, 안 할 것은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토 씨 같은 책이 나오는 것은 한국 사정이나 한국 대통령을 한국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일본의 관점에서만 재단하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종의 우월의식이다. 자국 중심의 관점과 우월의식은 곧잘 국익으로 포장된다. 국익은 국가 간에 충돌할 수도 있고, 같은 사안이라도 국가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무토 씨는 “세계는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맞다. “세계는 일본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일본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 일본 국내의 반발을 다독이며 어렵게 준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탈퇴해 버린 것을 얼마만큼 준엄하게 비판했는가. TPP는 일본 국익에 중차대한 사안이 아닌가.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협약을 탈퇴한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토 씨는 한국은 과감하게 비판하면서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보복으로도 볼 수 있는”이라고 매우 중립적인 표현을 썼다. 그것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토 씨는 문 대통령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에 ‘노’라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면서 “결국은 미국에 ‘노’라고 말하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라며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 화제를 부른 게 벌써 30년 전의 일이고, 민주당 정권도 한때 미국에 ‘노’라는 태도를 보여 미일관계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무토 씨가 진정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다면 일본의 실패를 예를 들면서 충고를 하는 게 옳다. 일본도 했던 실수에는 입을 닫고, 지금 한국의 태도만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가.

무토 씨는 “한국인은 머리가 아니라 하트(심장)로 생각한다”고 비판한다. 여러 번 같은 표현을 썼다. 그래서 한국인은 분노에 몸을 맡기고, 촛불집회로 달려가고, 문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이 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생각은 원래 머리로도 하고, 심장으로도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보완관계일 뿐,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일본은 차가운 머리만 있고, 따뜻한 심장이 없다. 나는 늘 일본은 2%가 부족해서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족한 그 2%가 바로 따뜻한 심장이다.

최근의 글로벌 트렌드도 심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게 ‘소프트 파워’이자, ‘공공 외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인이 약동하는 심장을 가졌기에 3·1독립운동과 4·19혁명, 6·10항쟁도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02년 한일공동월드컵 때 광장을 물들인 붉은 악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통일국면에서도 한국인의 심장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백보를 양보해서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치자. 무토 씨의 책이야말로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쓴 책이다. 무토 씨 본인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묻고 싶다. 머리로 생각했다면 이 책은 써서도 안 되고,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책 제목은 한국에서는 입학 취업 결혼 노후 등 단계마다 가혹한 경쟁을 해야 하고,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빈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 암울한 현실을 언급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자신은 성공하지 못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제목은 이미 2월에 ‘다이아몬드 온라인’이라는 일본 매체에 그가 비슷한 글을 기고할 때 사용했고, 그 때도 한국에서 문제가 됐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한국인도 꽤 있을 듯하다. 나도 그중의 한명이다.

그러나 무토 씨도 책에서 “예전에는 일본도 그랬다”고 언급했듯이 한국의 현실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고통을 완화할 수 있을지, 완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한국과 한국인의 역량, 지도자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같은 경험을 했던 이웃국가의 지식인으로서, 한국을 안다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한국이 하루 빨리 그런 사회에서 벗어나도록 응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비아냥대는 듯한 제목을 단 것은 배려가 부족했다(그러나 출판사는 일부러 이 제목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성공했다).

35년째 서울에서 특파원, 지국장 등으로 취재 중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특별기자는 ‘서울에서 여보세요’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무토 씨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새 책의 타이틀로 한국 여론을 꽤나 자극하고 있다. 대일외교 등 한국비판은 좋지만,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확실히 전 대사로서는 세련됨이 결여돼 있다. 오랫동안 (한국과) 사귀어오다 보니 본인도 한국화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무토 씨에 대해 한일 언론이 모두 ‘친한파’ ‘지한파’라는 말을 썼다. 한국에 정통하다고도 했다. 그의 책을 읽으며 앞으로 이런 말을 쓰려면 한국에 오래 근무하고, 한국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일파’ ‘일본에 정통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국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있어야 비로소 상대국을 아는 사람, 상대국과 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토 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그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무성의 후배는 벌레를 씹은 듯 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한국이 고쳐야 할 버릇이나 고질병, 무지 등에 대해 일본의 누군가가 따끔하게 충고를 해야 했고, 본인이 총대를 멨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그런 주장은 참으로 오랫동안,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혐한류 책을 통해 이미 질릴 만큼 들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무토 씨의 책도 혐한류에 속한다. 그는 한때 한국에서 일본을 대표했던 대사였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누가 그런 책을 써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지 않는가.

그는 전직 주한 일본대사로서 다른 방법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에게 한국의 사정을 알리는 책을 쓰는 게 더 잘 어울린다. 그는 그럴 만한 자격과 실력도 갖췄다.

무토 씨는 위안부 갈등으로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킨 조치를 잘했다고 했다. 그는 다른 말도 했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한일통화스와프 협의와 고위레벨의 경제협의까지 중단한 것은 그동안 역사문제와 다른 분야는 분리 대응하겠다고 한 방침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게 전직 주한 일본대사의 품격이자, 국익에 밝은 전직 고위 외교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요즘 한일 관계에서 최고지도자든, 언론이든, 오피니언 리더든, 평범한 국민이든, 상대국을 비난해봤자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갈등이 빚어지면 한국도, 일본도 상대국 언론의 영향을 받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양국 언론은 이제 상대국을 비난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국 국민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펜과 마이크의 방향을 상대국이 아니라 자국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무토 씨가 한국에 대해 지식을 쌓은 것은 국가 덕분이다. 따라서 외무성의 후배들이 벌레를 씹은 듯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에 누를 끼치는 행위다. 평생 국가의 녹을 먹고 산 사람이 신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무토 씨의 책을 일본에서 받은 날 오후, 서울시내의 한 대학에서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분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일본 신문과 방송의 서울특파원들도 있었고, 한국 대학생들도 여럿 방청했다. 이 전직 대사는 ‘한일관계의 패러독스’라는 강연을 하면서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많이 했다. 한국 기자로서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이 분만이 아니다. 나는 전직 주일 한국대사를 여섯 명쯤 알고 지낸다. 공사급은 그보다 훨씬 많다. 단언하건데, 이들의 입에서 무토 씨가 말하는 식으로 일본을 비판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나라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그들에게 일본 비판을 유도하는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다. 기자로서의 실력과 기자 정신을 비판한다면 감수하겠다.

내 판단은 무토 씨가 한국에 대한 지식을 잘못 활용하고 있으며, 팔리는 책을 만들려는 출판저널리즘의 얄팍한 논리에 영합했다는 것이다. 취임한지 며칠 안 되는 문재인 대통령을 자극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서둘러 책에 담으려는 출판사와 무토 씨의 장삿속이 맞아떨어진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책 표지에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크게 싣고 ‘왜 지금 문재인인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카피를 붙인 게 그걸 웅변한다. 이 책만이 아니다. 허접한 혐한류 책도 아니고 요즘 자타 공인의 한국통들이 내는 책들의 제목이 한국을 자극하고, 일본의 흥미를 끌려는 것들이 많아 걱정이다. 어떤 나쁜 기류가 일본에 생긴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일본인들이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 칼럼도 무토 씨의 책 중에서 자극적인 내용만 인용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 비아냥대는 듯한 표현도 있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가. 그렇다. 그렇다면 왜 그런 식으로 칼럼을 쓰는 것인가. 무토 씨의 책을 읽은 한국인의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서 무토 씨의 글쓰기 스타일을 흉내낸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비난한다면 오롯이 수용하겠다.

일본인의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을 것 같다. 무토 씨의 책에 한국인이 귀를 기울일 만한 대목은 전혀 없나. 235쪽이나 되는 책에 왜 그런 것이 없겠는가. 있다. 일본인들이 공감할 대목은 더 많을 것이다. 일부 한국인들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무토 씨의 책에 공감할 대목이 있다고 쓰더라도 내 칼럼을 관통하는 요지는 한국의 시각에서 무토 씨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의 책을 꼼꼼히 읽지 않고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 일부를 인용했지만, 구석구석까지 읽으면 비판할 만하다고 인정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토 씨가 일부 한국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내용을 썼다 하더라도 이 책의 전체적인 의도는 일본의 시각으로 한국을 비판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공감할 만한 부분이라는 것도 극심한 경쟁사회를 비판한 4장에 국한돼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따라서 전직 주한 일본대사라면 한국인이 귀를 기울일 만한 교훈을 감질나게 보물찾기처럼 숨겨놓지 말고, 그걸 메인 테마로 끄집어내서 애정을 갖고 제대로 써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무토 씨라면 그런 책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다.

일부 지인은 내가 무토 씨를 비판하면 무토 씨나 출판사 쪽에서 되레 기뻐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도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논란을 빚고 있는 전직 주한 일본대사의 책을 자세히 읽고 정제된 의견을 내놓을 필요성을 느꼈기에 장문의 글을 쓰게 됐음을 밝혀둔다.

나는 무토 씨의 책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는 쓰고 싶은 것을 썼고,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말까지 했다. 관심도 끌 만큼 끌었다. 그를 향한 비난도 성원도 그의 몫이다. 한국 언론도 여러 곳에서 비슷한 시각으로 그의 책을 비판했다. 앞으로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는 한 그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나머지는 독자와 국민의 몫 아니겠는가.

‘한국인으로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제목이 자극적이라서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조용히 동의한다. 무토 씨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한국 외교관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한국 외교관 중에는 아직 주재국을 비판하는 책을 낸 사람이 없는데, 그 기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니.


심규선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