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호남 출신의 이낙연 국무총리와 상고 출신의 김동연 경제부총리, 유엔 최고위직 한국 여성 출신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을 발탁해 박수를 받았다. “이념·진영을 가리지 않고 ‘대탕평 내각’을 만들겠다”던 대선 공약이 현실화할 것으로 믿은 국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몇 차례 나눠 발표된 새 정부 조각(組閣) 리스트를 살펴보면 어느샌가 ‘대통합 정부’는 실종되고 만 듯하다.
어제 문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에 조명균 전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유영민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사장,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김영록 전 의원, 여성가족부 장관에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를 지명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거나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다. 야당의 반발에도 대선 공신과 측근들로 채운 ‘친문(친문재인) 내각’으로 제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인 셈이다.
신설 예정인 중소벤처기업부를 빼고 이제 내각 인선은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두 자리만 남겨두고 있다. 강 후보자를 제외하곤 모두 노무현 정부 시절이나 대선 캠프·싱크탱크에서 문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다. 상당수가 운동권과 시민단체를 거치며 이른바 기득권 주류세력의 교체를 외쳐 온 이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 요직 최다 배출 대학은 ‘참여연대’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야당의 지명 철회 요구를 받아 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어제 강행함으로써 앞으로 정국은 가파른 여야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 공산이 커졌다. 문 대통령의 협치(協治) 약속이 무색해진 형국임에도 청와대는 오히려 “정치의 중요한 원칙은 타협”이라며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당장 국회 일정 보이콧 등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으로선 80%를 상회하는 국정수행 지지도를 무기로 국민이 야당의 발목 잡기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신생 정부 최대의 적(敵)은 늘 높은 지지도였다. 지지도를 믿고 과속 질주하던 역대 정부의 행로부터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