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이 펴낸 ‘… 사령관 양세봉’
조선총독부가 만주에서 활동한 무장투쟁 세력인 ‘조선혁명군’을 평가한 내부 문건이다. 불치병에 비유할 정도로 일제는 조선혁명군 처리를 놓고 골머리를 앓았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앞마당이 된 만주에서 10년 가깝게 무장투쟁을 벌인 조직은 한국과 중국을 통틀어 조선혁명군이 유일하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은 최근 내놓은 ‘남만주 최후의 독립군 사령관 양세봉’(역사공간·사진)에서 조선혁명군 장기 투쟁의 원동력으로 사령관 양세봉(1896∼1934)의 탁월한 지도력과 한인 동포들의 절대 지지, 중국인들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꼽았다.
장 소장은 “지주나 지식인이 다수였던 무장투쟁 지도자들 가운데 소작농 출신은 양세봉이 거의 유일했다”며 “소작농으로 생계를 잇던 간도 이주 조선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힘써 사회주의자들한테도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만주뿐만 아니라 국내까지 잠입해 독립운동을 벌인 양세봉의 대담성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혁명군은 1932∼33년 250여 명의 대원을 국내로 침투시켜 군자금 모집과 일본 관공서 습격 등의 활동을 펼쳤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