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악계 살아있는 전설, 허영호-엄홍길의 ‘세계최고봉’
한국 산악인을 대표하는 엄홍길(왼쪽), 허영호 대장이 9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나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있다. 허 대장은 1987년, 엄 대장은 1988년 각각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처음 올랐다. 두 대장은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꼭대기에 온기가 없더라고. 그래서 빨리 내려왔지.”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산악계의 전설 허영호 대장(63)과 엄홍길 대장(57)의 인사에서는 역시 산이 빠지지 않았다.
○ 달라진 ‘에베레스트’
1987년 12월 한국 산악인 최초로 겨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허영호 대장. 허대장은 올해 생애 여섯 번째이자 현역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을 세웠다. 동아일보DB
정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자 했으나 4시간이 지난 후 내려왔다. 허 대장은 “오전 6시 30분에 정상에 올랐는데 텐트에서 난로를 피워도 기온(영하 35도∼영하 30도)이 올라가지 않았다. 맥박이 분당 130회가 넘으면 미련 없이 내려와야 된다. 가래가 생기고 몸 상태가 안 좋아져 짐을 쌌다”고 말했다.
엄 대장은 허 대장이 겨울철 등정에 성공한 이듬해인 1988년 9월에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원래 허 대장과 엄 대장은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둘 다 1988년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 당시에는 한 국가에서 한 시기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한 팀만 할 수 있었지. 그래서 내가 앞당겨 1987년 겨울철에 에베레스트로 간 거야.”
20, 30대였던 본인들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듯이 산도 변했다. 허 대장은 “서너 평 되던 에베레스트 정상도 조끔씩 깎여 내려가 이제는 조그만 텐트 2개 정도 설치할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은 틈인 크레바스도 줄었다. 허 대장은 “네팔 대지진(2015년) 이후 곳곳의 크레바스가 평탄하게 메워졌다. 예전에는 크레바스 사이로 100여 개의 사다리를 걸쳐 놓아야 했지만 최근에는 10개 정도면 된다”고 했다. 엄 대장은 “크레바스만 만나면 온몸에 마비가 올 정도였다. 내 눈 앞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었던 셰르파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며 최근 변화에 놀라워했다.
에베레스트 등반이 과거보다는 수월해지면서 돈을 받고 정상까지 안내해 주는 상업등반대도 등장했다. 엄 대장은 “마음속으로 유서를 쓰게 했을 정도로 큰 벽이었던 에베레스트가 이제 돈으로 정복할 수 있는 산이 됐다. 개인당 8000만 원을 받고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켜 준다는 러시아 상업등반대는 심지어 베이스캠프에 영화관까지 만든다고 한다. 산은 ‘테크닉’과 ‘유희’로 정복하는 게 아닌데…. 그런 생각이 희석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하산하면서 인생을 보다
K2에 올라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을 마친 엄홍길 대장이 2000년 8월 귀국하며 환영받고 있다. 엄 대장은 이후 8000m급 봉우리 2개를 더 올라 16좌 등정을 마무리했다. 동아일보DB
엄 대장도 같은 심정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올라가는 것만 높이 쳐서는 안 됩니다.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처음 출발했던 지점까지 무사히 내려와야 성공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우리 삶도 같아요. 잘 내려가야 다시 오를 수 있습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