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인의 미식견문록
장 프랑수아 피에주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피에주 셰프는 “한국에 프랑스의 요리라는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바앤다이닝·해비치호텔 제공
“제주에 와서 너무 기쁩니다. 저는 프랑스 요리사 장프랑수아 피에주입니다.”
프랑스 ‘르 그랑 레스토랑’의 주방 모습. 바앤다이닝·해비치호텔 제공
그는 해외 방문을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셰프다. 여행이 싫어서가 아니라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요리 퀄리티를 위해 가급적 레스토랑을 지키는 편이다. 서른 시간이 걸린 이번 제주행을 감행한 이유로 말문을 열었다. “프랑스 요리를 해달라고 초대받았지만 실상은 요리라는 ‘프랑스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오랜 역사만큼 문화가 깊은 나라로 평소 관심이 많았습니다.”
―요리사로서 프랑스 문화유산의 수호자이고 싶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셰프가 생각하는 프랑스다운 요리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최상의 재료로 가장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단, 내 경우에는 한 접시에 담긴 요리가 3가지 맛을 넘지 않도록 한다. 또 향신료 등으로 원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고 재료의 고유한 맛이 살아 있어야 한다. 송아지 요리라면 송아지의 맛이 나야 한다.”
―당신이 주창한 새로운 프렌치 조리법 ‘미조테 모데른’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요리 창작을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요리를 위해 특별한 연구를 한다기보다는 ‘삶의 방식’ 자체를 ‘요리 방식’으로 승화시키는 편이다. ‘요리는 자연을 듣는 것’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면 내가 만드는 디저트 중에 산딸기와 소나무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 있다. 프랑스에서 숲을 걷다 보면 소나무 아래 산딸기가 자라는 걸 볼 수 있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두 재료를 요리에도 함께 올리는 식이다. 자연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피에주 셰프가 걸어온 전적은 한마디로 ‘프랑스 요리계의 엄친아’다. 14세에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20대 초반에 알랭 뒤카스 셰프의 레스토랑 ‘루이 엑스브이 Louis XV’ 부주방장으로 합류한 뒤 26세에 ‘를레 뒤 파르크’의 주방장(Chef De Cuisine), 30세에 플라자 아테네 호텔의 총주방장을 맡는 파란을 일으키며 12년간 알랭 뒤카스의 오른팔이 되어 일했다. ‘알랭 뒤카스 오 플라자 아테네’가 미쉐린 3스타를 받았을 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이후 크리용 호텔 레스토랑 ‘레 장바사되르(Les Ambassadeurs)’의 셰프로 5년간 근무했고 이 레스토랑은 미쉐린 별 두 개를 받았다. 2010년 파트너와 함께 부티크 호텔을 오픈하면서 호텔 내 ‘브라스리 토뮤’, ‘장프랑수아 피에주 레스토랑’을 열기도 했지만, 오롯이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독립한 것은 ‘르 그랑 레스토랑’에서부터다. 2015년,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꼭 30년 만이었다.
―어릴 적 꿈이 요리사였나.
“어릴 때 꿈은 정원사였다. 풀, 나무에 관심이 많았는데 식재료가 되는 채소류에도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늘어갔다. 프랑스 발랑스 출신인데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자크 마니에르 셰프의 영향으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4세에 요리학교에 진학했다.”
―거장들과 일했다. 지금의 장프랑수아 피에주가 있기까지 가장 영향을 준 셰프는….
“브루노 시리노 셰프는 요리에 대한 사랑과 정확도, 알랭 뒤카스는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크리스티앙 콩스탕 셰프는 정리, 조직화(Organization)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요리학교의 스승을 포함하여 서로 간의 만남을 통해 지금의 내가 이뤄진 것 같다.”
―오너 셰프가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보다 일찍 오픈하고 싶은 유혹이나 욕심은 없었나.
피에주 셰프의 방한은 처음이지만 한국과의 인연은 깊은 편이다. 정확하게는 한국인, 그것도 윤화영 셰프와의 인연이다. 윤 셰프는 해비치 호텔 ‘밀리우’의 오픈 기획을 맡았고, 지금은 부산 해운대에 있는 레스토랑 ‘메르씨엘’의 오너 셰프로 국내 프렌치 파인 다이닝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경험한 피에주 셰프의 파인 다이닝은 당시 컬처 쇼크와 같은 것이었다고 윤 셰프는 말한다.
“예술사를 공부하려고 파리로 가서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같은 반 친구의 초대로 얼떨결에 간 곳이 ‘를레 뒤 파르크’였죠. 프랑스에서 첫 파인 다이닝을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했던 거예요. 당시 주방장이 피에주 셰프였고 그의 요리를 맛본 충격과 감동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았어요. 미학(美學)을 공부하러 온 사람이 미학(味學)으로 갈아타게 된 계기가 됐죠.”
이후 요리를 공부한 윤 셰프는 피에주 셰프를 찾아가 플라자 아테네 호텔의 주방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다시 그를 따라 크리용 호텔의 주방 실습생으로 옮겨갔다. 윤 셰프를 지켜보던 피에주 셰프는 그에게 고용 비자를 제안해 2년을 같이 일했다. 이후 윤 셰프가 알랭 뒤카스 셰프로부터 고용비자를 발급받은 것도,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이나 호텔 포시즌 파리 조지 V에서 경력을 쌓게 된 것도 피에주 셰프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을 한국인 실습생을 직원으로 채용해 끝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피에주 셰프에게도 윤 셰프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같이 일하는 것이 정말 좋았던 ‘동료’예요. 매우 열정적이고 진지했죠. 제가 깜짝 놀랄 만큼 열심히 했어요.”
냉철한 요리 천재의 모습 이면의 훈훈한 인연. 하지만 키친에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는 것이 윤 셰프의 전언이다. “퀴숑(Cuisson, 익힘 정도)에 대한 피에주 셰프의 엄격함은 1990년대부터 악명을 떨쳤어요. 클래식 요리에 대한 그의 지식과 사랑은 제가 만나본 셰프들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한 번은 주방 통로에서 동료와 소스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피에주 셰프가 ‘잘 모르면 에스코피에(왕들의 요리사라고 불렸던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사)의 요리서적 xx 페이지를 펴봐’라고 말해줄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 그가 한국을 경험할 시간은 짧았다. 약속한 갈라 디너를 선보이기에도 빠듯했지만, 피에주 셰프는 제주에 도착했을 때 제주 향토 요리를 가장 먼저 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 나라의 요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전통 음식을 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강렬하게 인상을 준 한식이 있었나.
클래식과 모던 사이, 전통 프렌치와 글로벌 트렌드 사이 수많은 요리사들이 새로운 갈림길을 찾는 요즘, 피에주 셰프는 ‘프렌치’라는 요리 유산을 계승하는 젊은 수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많은 요리사들이 전통을 반영한 새로움을 이야기하지만, 피에주 셰프는 새로움을 반영한 전통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나는 프랑스 요리를 하는 요리사입니다”라는 그의 첫 인사말이 인터뷰를 마칠 때가 돼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