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앞으로 2, 3일 안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그대로 임명하겠다는 방침을 어제 밝혔다. 13일 “국민 눈높이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며 김 위원장을 임명한 데 이어 두 번째 임명도 강행함으로써 국회 문턱에서 막힌 인사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김 위원장 임명 이유로 ‘국민 검증 통과’를 내세운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오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공직 후보자를 직접 검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국회의원들에게 그 역할을 맡긴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것도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 독선’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국회의 정부 견제 기능을 외면하고 ‘여론 정치’를 하겠다면 청문회가 왜 필요한가.
문재인 대통령은 높은 국정 지지도나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여론조사만 믿고 임명을 강행했을지 모른다. 2015년 야당 대표 시절에도 문 대통령은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을 놓고 “여야 공동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제안을 내놔 초헌법적 포퓰리즘 발상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총리 인준을 여론조사에 의존하려면 국회의원을 뽑을 이유가 없어지고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던 문 대통령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흔들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어제 문 대통령의 김 후보자 임명을 협치(協治) 포기 선언이라며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등 3인에 대한 인사청문회 오전 일정을 파행시켰다가 복귀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참석하는 상황에서 한국당만 보이콧하다가는 오히려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야당도 결국 보다 엄정하고 날카로운 검증으로 왜 이런 인사가 돼선 안 되는지 국민에게 증명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