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야당들이 반대를 넘어서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하면 더 이상 협치가 없다며 압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어제로 36일째다. 그동안 국회의 협조를 얻어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국무위원 지명밖에 없다. 다른 협치할 일이 없었는데,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을 통한)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라며 “대통령은 국민의 판단을 보면서 적절한 인선인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그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결정적인 하자가 없으면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 참고하는 과정으로 인사청문회를 이해하고 있다”고 한 말을 빗대 “청문회가 참고용”이냐고 맹공했다. 과거 정권도 인사청문 결과에 상관없이 공직자를 임명하기도 했지만 청문회를 ‘참고용’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에서 대상이 장관까지 확대된 인사청문제도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통해 더욱 엄정한 검증을 통해 공직을 임명하자는 취지다. 청문회를 참고용으로 보는 시각은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기능을 경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자세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동의와 정부조직개편, 추가경정예산안 등에 대해 어떻게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문 대통령은 1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우리 스스로 아주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야당이 반대하는 일이 되풀이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어제 2005년 이전 위장전입과 2008년 이전 논문표절을 배제하는 인사기준 검증안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높은 기준을 무너뜨렸는데 대통령의 말에 동의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강 후보자를 양보할 수 없다면 청와대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을 야당에 제시하고 타협을 시작해야 한다. 꼬일 대로 꼬인 인사정국을 오히려 ‘문재인 협치’를 보여줄 기회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