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정치부 기자
백의종군을 선언한 바른정당 유승민 전 대선 후보처럼 한국당 홍준표 전 대선 후보도 잠시 숨을 고르면 했다. 어떤 명분을 내걸든 대선 후보를 지낸 인물이 당권을 위한 이전투구의 한가운데 서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보수 정당은 지난 10년 동안 친이(친이명박)-친박, 친박-비박으로 갈려 홍역을 치렀다. 그런 한국당이 또다시 사람을 중심으로 헤쳐 모여 ‘시즌3’를 찍는 일은 없으면 했다. 보수 진영의 지혜를 모두 끌어 모아도 모자랄 판에 ‘친홍(친홍준표)’이란 소(小)계파의 탄생은 유예되는 게 좋았다.
친박 핵심도, 전 대선 후보도 비운 자리에는 ‘보수의 샛별’이 자랄 수 있도록 땅을 다졌으면 했다. 2인자를 키우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의 ‘공포정치’ 탓에 엉뚱하게 최순실만 컸고 막상 대선에서는 선수 기근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한국당의 상황을 모르는 생뚱맞은 소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 가서 명함 내밀기가 망설여진다는 30, 40대 당직자와 보좌진들의 얘기다. ‘낙하산 의원’들보다 더 오랜 기간 보수 정당을 지켜온 이들의 탄식 섞인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한국당이 당권 레이스에 본격 돌입한 지금, 이런 희망은 그저 상상에 그칠 조짐이다. 중진을 향해 호기롭게 “입 닥치라”고 했던 초·재선은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체질 개선도 만만찮아 보인다. 한 초선은 최근 당 연찬회에 2012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패배 보고서를 함께 읽자며 200부 넘게 준비해 갔다가 배포도 못 했다고 한다. 그는 “타산지석 삼을 대목이 많았는데 지도부가 ‘남의 당 얘기를 뭣 하러 돌려 보느냐’고 막더라. 우리가 순치(馴致)돼 있잖느냐”며 자조했다.
홍 전 후보는 결국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없는 입장이 됐다”며 18일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 일정을 공지했다. 친박들은 여전히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이 하나 없이 ‘포스트 친박’ 체제에서 살길을 찾느라 바쁘다. 당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쪼그라들었는데 대다수는 여전히 부자가 몸을 사리듯 한다. 보수 재건은 한국당의 기득권을 되찾자는 게 아니다. 건강한 보수가 있어야 진보에도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한국당은 이대로 ‘영남 자민련’으로 주저앉을 것인가. 한국당의 나락은 끝이 없어 보인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