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민혁. 스포츠동아DB
“이제 ‘됐다’ 생각하고 뛰는데 나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버렸어요.”
누구나 처음은 잊기 힘들다. 야구선수라면 프로 데뷔 첫 경기, 첫 승, 첫 안타, 첫 홈런 등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두산 3년생 김민혁(21)은 평생 잊기 힘든 프로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팬들의 기억에도 그렇게 남을 듯하다.
16일 잠실 NC전. 2-10으로 끌려가던 8회말 선두타자 오재일(좌타자) 타석 때 대타로 등장한 김민혁(우타자)은 상대 좌투수 임정호를 상대하면서 초구 파울, 2구 헛스윙으로 볼카운트 0B-2S로 몰렸다. 여기서 3구째 바깥쪽 공을 강타해 깨끗한 중전안타를 날렸다.
그런데 아뿔싸. 1루로 달려나가는 순간, 몇 걸음 가지 못해서 그만 그라운드에 엎어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나선 학부모도 아닌 운동선수가 ‘꽈당’ 하고 엎어지자 모두들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다음. 빠른 타구를 주운 NC 중견수 김준완이 그대로 1루로 던졌다. 김민혁은 다시 일어나 1루로 전력질주했지만, 발이 그다지 빠르지 않은 탓에 생사를 판단하기 힘들었다. 만약 1루에 공이 먼저 도달한다면? 데뷔 첫 안타는 ‘중견수 앞 땅볼’로 공중분해될 위기. 그러나 김민혁의 발이 조금 빨라 마침내 안타가 됐다. 이때 김준완의 송구는 1루수 옆으로 비켜났고, 김민혁은 다시 정신없이 2루까지 달려 안착했다. 넘어진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이후 최주환의 중전안타에 3루로 진출하고, 민병헌의 좌중간안타에 데뷔 첫 득점까지 기록했다.
김민혁은 광주동성고 출신으로 2015년 2차지명 2라운드(전체 16순위)에 지명돼 두산 유니폼을 입은 프로 3년생 내야수다. 키 188㎝ 몸무게 100㎏의 거구로, 3루수와 1루수를 본다. 펀치력도 있고 타격재능도 있어 고교 시절 ‘리틀 이대호’로 불렸다. 지난해까지는 퓨처스(2군) 팀에만 머물러 있었다. 육성선수로 전환됐다가 정식선수로 등록되는 우여곡절 끝에 올해 5월 17일 데뷔 후 처음 1군에 등록됐다. 올 시즌 2군 기록은 40경기에 출장해 타율 0.379(132타수 50안타), 10홈런, 35타점. 1군 무대에서 통하려면 아직 변화구에 대처하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평가지만, 김태형 감독도 장래성을 보고 기회를 주고 있다.
김민혁은 5월20일 광주 KIA전에서 9회초 대타로 데뷔전을 치른 바 있다. 정용운을 상대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이내 24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어 6월15일 다시 1군으로 콜업돼 잠실 LG전에서 이동현을 상대로 3구만에 다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이날 NC전에서 마침내 3번째 타석 만에 감격의 데뷔 첫 안타를 뽑아냈다.
김민혁은 경기 후 데뷔 첫 안타 공을 소중히 감싸 쥐더니 첫 안타 순간에 대해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이제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타가 되면서 1루로 달려 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다리가 확 풀리면서 넘어졌다”며 수줍게 웃었다. 다시 일어나 달릴 때 창피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창피한 건 둘째 치고 상황이 상황(중견수가 1루로 송구)이라 1루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난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형들이 ‘왜 그렇게 못 뛰냐’며 뭐라 그러시더라”며 쑥스러워 했다. 그는 이어 “1군에 올라와 첫 타석 때는 정말 너무 긴장해 투수밖에 안 보였다. 두 번째 타석 때는 조금 여유가 생기더니 오늘은 더 나아졌다. 1타석씩 조금씩 마음이 안정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혁은 “첫 안타는 잊기 힘들다는데, 더 잊기 힘들 게 됐다”며 웃었다. 데뷔 첫 안타를 치고 1루로 달리다 ‘꽈당’한 사례는 KBO리그 역사에도 없는 듯하다. 김민혁도, 팬들도 잊기 힘든 안타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잠실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