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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표적수사-왜곡보도 억울”… 첫 공판서 22분 자기변론

입력 | 2017-06-17 03:00:00

“사건 아닌 사람 수사” 직권남용 부인… “잘못된 보도로 국민의 지탄 받게돼”
발언 길어지자 재판장이 자제 요청
직업 질문에 “현재 무직입니다”
재판 20분전 도착… 미소 보이기도




“대통령 탄핵 책임… 국민께 사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16일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이 16일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첫 재판에서 자신이 법정에 서게 된 게 언론 탓이라고 주장했다. 특정 언론사의 보도를 거론하면서 “일만 하며 살아온 제 인생은 지난해 7월 18일 처가 땅 관련 기사 이후 모든 게 변했다”며 “잘못된 언론보도로 한순간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또 직권남용 등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다만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탄핵을 당하게 된 데 대한 참모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 우병우 “청와대 나온 뒤 8개월 가까이 고통”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우 전 수석은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A4용지에 미리 써 온 내용을 22분 동안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는 “일만 알고 산 제 인생은 잘못된 언론보도 하나로 한순간 지탄받는 존재로 전락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공직자의 숙명으로 감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에서 나온 뒤 8개월 가까이 잠을 이룰 수 없는 고통의 나날 속에서 공직생활을 돌아보며 오늘 이 자리에 왜 피고인으로 서게 됐는지 반추한다”고 밝혔다.

우 전 수석은 처가의 서울 강남 땅 매각 등 자신과 얽힌 각종 의혹 보도를 길게 나열하며 “기사 수가 많아 해명할 엄두도 못 냈다”, “재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유죄임을 전제로 보도하기도 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제가 청와대에서 공직자로 근무했지만 그 이전에 저도 국민의 한 사람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 추정 원칙하에 공정한 재판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검찰 수사에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예컨대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을 보고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저에 대해서는 강남역 땅 사건으로 의혹이 제기된 뒤 결국 민정수석과 비서관 업무에 관해 직권남용으로 기소했다.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우 전 수석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에 대한 좌천성 인사 조치 강요 등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민정수석으로서 정당한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의 발언이 길어지자 이 부장판사는 “준비하신 내용을 다 읽을 필요는 없고 마무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나머지는 다 줄이겠다”면서도 5분가량 더 발언을 이어갔다.

우 전 수석은 법정에서 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축복 속에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되도록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청와대 비서진의 한 사람으로 준엄하게 느낀다”며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사죄 말씀 올린다”고 말했다. 또 “대단히 불행하게도 박 전 대통령이 현재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님의 뜻도 밝혀질 거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 증인 신문 도중 검찰 지적에 언성 높여

이날 우 전 수석은 재판 시작을 약 20분 앞두고 법원에 도착했다. 앞서 검찰 조사나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과는 달리 취재진의 질문에 차근차근 답변하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도 국정 농단 사태를 몰랐다는 입장이냐”는 취재인의 질문에 우 전 수석은 “법정에서 충분히 제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짧게 말했다. 이어 “재판을 받으러 왔기 때문에 성실히 재판받겠다는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한 뒤 법정으로 향했다.

법정에 들어온 우 전 수석은 피고인석에 앉은 뒤 법정 경위에게 물을 요청하고 변호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검사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현재 무직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이 증인으로 출석해 우 전 수석의 문체부 간부들 인사 조치 강요 혐의에 대해 증언했다. 우 전 수석은 김 전 장관에게 직접 질문했고, 일부 답변에 대해선 가끔 헛웃음을 지었다. 신문 도중 검찰 측에서 우 전 수석 측에 “증인한테 질문을 안 하고 자꾸 자기 얘기만 하면 어떡하느냐”고 지적하자 우 전 수석은 “내 기억이 이런데 증인 기억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는 것이 왜 잘못된 겁니까”라며 언성을 높였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