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논설위원
“Roh라고? No가 맞지!”
이런 궁금증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를 지낸 윌리엄 새파이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의 글 주제가 되기도 했다. 새파이어는 노무현 대통령 이름을 놓고 ‘Roh냐, Noh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칼럼에서 호기심을 유감없이 쏟아냈다. 여기저기서 취재한 내용을 종횡무진 늘어놓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이 초급장교 시절 자신의 인식표에 새겨진 ‘No’를 보고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며 ‘Roh’로 바꿨다는 에피소드까지 찾아냈다.
오래전 얘기가 새삼 떠오른 건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외신들이 새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지칭한 ‘달빛정책(Moonshine Policy)’에서 묻어나는 꺼림칙한 뉘앙스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이름 ‘Moon’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을 조합해 만든 말이지만, moonshine은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절 한밤중 달빛 아래 몰래 만드는 밀주(密酒) 위스키를 뜻한다. 사전에는 ‘터무니없는 말, 헛소리’라는 의미도 나와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북한의 은밀한 외화벌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돼 왔다. 데이비드 애셔 전 국무부 자문관은 북한의 위조지폐, 위조담배, 마약거래, 무기밀매 같은 범죄활동을 ‘달빛경제(moonshine economy)’라고 이름 붙였다. 나아가 빅터 차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국장은 햇볕정책의 단물을 빼먹으면서도 개혁·개방은 철저히 차단하는 북한식 대응을 ‘달빛정책’으로 칭하고, 대표적 사례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꼽았다.(‘불가사의한 국가’·2012년)
‘햇볕’에 北 ‘달빛’ 재가동?
사정이 이럴진대 외신들이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달빛정책’이란 이름을 붙였을 때 그 근저엔 새 정부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게 깔려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행간에서 그런 뉘앙스를 읽었을 것이다. ‘Roh냐, No냐’라는 유별난 관심도 사실은 “반미(反美)면 어때?”라던 한국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서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