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현대에는 표준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데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측정과학’이라는 개념이 물리, 화학, 생물 분야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측정의 기준이 되는 ‘측정원기’는 현대과학기술의 결정체로 불리며 다른 과학기술 발전의 기틀이 된다. 측정과학을 만난 표준, 즉 ‘측정표준’은 인류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로 구현한 사회적 기준시스템인 셈이다.
고도의 측정표준은 실제 우리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을까. 일례로 시간표준은 우리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다. 높은 주파수 신호로 이루어지는 통신 분야에서 시간표준이 부정확하면 큰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 시간표준 원기 ‘세슘원자분수시계’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1억 년간 1초 이하의 오차를 갖고 있을 만큼 정확하다. 이렇게 확립한 시간표준은 ICT 산업뿐 아니라 국내 과학기술 및 산업계 전 분야에 쓰는 핵심 기준이 됐다.
측정표준은 첨단산업은 물론이고 의료, 환경, 식품 등 중요한 국가정책의 설립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명백한 표준을 제공함으로써 정책의 오류를 방지할 수 있고, 그 성과 역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측정기술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테면 의료 진단의 정확성 역시 측정표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의료검진기기를 교정할 측정기술이 부정확하면 환자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재정에도 큰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 진단의 오류를 줄여야만 중복진단, 과잉진료, 잘못된 치료시기 결정 등에 따른 진료비 부담 증대도 막을 수 있다.
측정표준은 선진사회와 선진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국가 인프라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부와 산업계도 이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국가측정표준체계가 세계적인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다가올 혁신의 시대를 맞아 첨단 국가측정표준시스템 구축에 국민적 관심과 성원이 한층 더 요구되는 이유다.
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