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기자
로드먼은 평양에 들어가고 나올 때 모두 ‘potcoin.com’(팟코인닷컴)이라고 쓰인 같은 티셔츠와 야구 모자를 착용했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유명인의 단벌 ‘공항 패션’은 이례적이다. 그는 트위터에 “내가 돌아왔다. 후원자인 팟코인닷컴에 감사한다”며 방북 공항 패션 사진을 올렸다. 로드먼 측은 또 “이번 여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팟코인 임직원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가 광고판 같은 모자와 티셔츠를 착용하고 공항에 나타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거다.
2014년 창업한 팟코인은 ‘비트코인’과 유사한 가상화폐 회사다. 비트코인은 암호 기술을 활용해 익명 거래를 할 수 있다. 추적도 어렵다. 이 때문에 요즘 해킹, 마약 거래 등에 자주 쓰인다. 팟코인도 은행들이 기피하는 대마초 거래를 팟코인으로 중개하며 돈을 벌고 있다. 로드먼의 방북 사실이 알려지자 팟코인 가격이 급등한 걸 보면 이 회사가 그의 방북에 돈을 대고 재미를 본 건 분명하다.
보안 전문가들은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새로운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북한 해커들은 해킹으로 벌어들인 돈을 게임머니로 바꾸거나 카지노 등에 보내 돈세탁을 하곤 했다. 북한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으로 빼돌려진 8100만 달러가 필리핀의 카지노로 보내진 것이 대표적이다. 요즘엔 비트코인을 활용해 추적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국(NSA)은 지난달 발생한 인터넷 인질극인 랜섬웨어 ‘워너크라이(WannaCry)’ 공격에 북한 정찰총국이 연루된 것으로 분석했다. 해커들이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를 위해 워너크라이를 시도해 14만 달러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을 모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비트코인 인질극’은 국내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얼마 전 웹 호스팅 회사인 ‘인터넷 나야나’가 랜셈웨어 공격을 한 해커들과 나흘 간 협상 끝에 13억 원의 비트코인을 몸값으로 치렀다. 정보보호 전문가인 박춘식 서울여대 교수는 “북한이 무역 관련 유엔 제재가 강화되자 외화벌이에 비트코인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비트코인 시장은 이 같은 위협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디지털 화폐를 이용한 돈세탁과 테러 지원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이 상원에 상정됐다. 국내에선 비트코인이 디지털 화폐인지, 금융상품인지 법적 정의조차 없어 마약 거래의 수익으로 압수한 비트코인 처리조차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비트코인 주도권을 놓고 기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관련 제도가 없으니 사고가 나도 책임질 사람이 마땅치 않다. 나쁜 짓을 하려는 해커가 이런 기술과 제도의 균열을 놓칠 리 없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금융시장을 바꿀 폭발력이 있는 핀테크 기술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무작정 막기보단 누구나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문턱은 낮추되 모니터링과 사후 관리는 철저히 해야 한다. 비트코인 시장을 새 정부가 강조하는 ‘네거티브 규제’의 본보기로 만들면 어떨까. 비트코인 ‘쩐의 전쟁’의 막은 이미 올랐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