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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플러스]진로교육, 큰 세상 보는 눈, 행복 찾는 길잡이 역할

입력 | 2017-06-20 03:00:00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인터뷰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21세기형 인재, 100세 시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단어들이다. 산업구조가 변해야 하고 학교 교육도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 중에서도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에게 어떤 진로 교육을 해주어야 하는지가 학부모와 교육계의 핵심 화두다. 급박하게 변화하는 사회지만 학교나 학부모가 자녀에게 ‘인생의 진로’를 가르쳐 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국형 진로교육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직업은 수단일 뿐 행복이라는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해온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진로교육관은 특히 주목된다. 이 교육감은 요즘 자사고 및 특목고 폐지 방침 등으로 예민한 교육이슈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만, 사실 그는 취임후 진로교육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정책역량을 투입해왔다. 15일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에서 그에게 ‘21세기형 진로교육’의 의미와 그가 추진하는 진로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새로운 진로교육 프로그램 ‘경기 꿈의 대학’

이 교육감은 진로 교육의 중요성을 묻자 오히려 “도대체 진로라는 개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진로=직업’이라는 획일화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맞이했고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도 불리는 지금, 진로라는 개념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하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살아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게 이 교육감의 주장이다.

건강하게 누구나 100세까지 수명을 누리는데 인공지능까지 발달하면 인간의 여가는 지금보다 훨씬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직업도 여러 차례 바뀔 가능성이 높다. 연령대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의 개념이 바뀌고 진로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교육감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알게 해주는 게 바로 진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에서는 시대에 맞는 진로 교육은 커녕 입시에만 매몰된 채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만 강요해왔다는 게 이 교육감의 진단이다. 오직 수능 시험을 잘 치게 하는 국영수 위주의 수업만 있을 뿐 인생의 행복을 의미하는 진로 교육은 찾을 길 없었던 게 현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나”라고 질문하면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실과 가정 같은 실용 과목이 아예 자취를 감춘 것도 원인이다. 대학 진학이 꿈이라는 일부 학생에게 “대학에 간 다음엔 뭐 할 생각인가”라고 물으면 절대 다수가 고개만 갸웃할 뿐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고교 과정 뿐 아니라 고교생이 목표로 한 대학에 가서도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교육감은 “대학 총장으로 일할 때를 기억해봐도 대학생 역시 인생의 진로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빠르게 변하는 시대 흐름을 생각해서라도 인생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진로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교육 과정에서 학생 스스로 자신이 잘하고, 하고 싶고, 즐길 수 있는 길과 꿈을 찾아주는 게 진정한 진로 교육의 의미라는 진단이다.
21세기 준비하는 진로교육


사진제공 경기도교육청

지방자치단체마다 과학관을 만들고 대기업이 생산 현장에 중고교생들이 체험 학습할 시설을 갖추기도 하지만 겉모습을 둘러보고 ‘체험학습보고서’만 작성할 뿐 제대로 된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는 되지 못한다는 점을 이 교육감은 안타까워했다. 그는 “선사 박물관에 가면 그 시대에는 어떤 환경에서 살았고 어떻게 발전해왔을지 학생들 스스로 토론하면서 배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이 정도 수준에 이르게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고교생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붙인 이름이 바로 ‘경기 꿈의 대학’이다. 고교 재학 중 저녁 시간을 이용해 각자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특화된 강의를 지역 내 대학 등의 장소에서 선택해 듣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처음 시작했다.

경기지역의 31개 시군 전역에서 819개 강좌가 개설됐다. 경기도내 대학은 물론 서울대와 고려대 등 모두 77개 대학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고교생이 방과 후 참여 대학으로 찾아가 각자 원하는 강좌를 들으면 된다.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 과학과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역사와 흐름을 알려주고 학생이 체험하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지역 내 대학이 없는 시군에는 담당 대학에서 거점 고교로 찾아와 강좌를 진행한다. 교수 또는 대학원생이나 박사급 연구원 등이 강좌를 담당한다. 여러 학교의 다양한 학년의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 융합의 효과도 있다.

“예를 들어볼까요? 생명의 신비를 다루는 강좌가 있어요. 암세포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거에요. 결국 암에 걸리면 왜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 배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저절로 익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명 과학이나 유전공학에 관심을 갖게 되는 학생이 늘어나는 거죠. 반대로 ‘아, 이 길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해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영화를 통해 본 과학 기술’이라든가 ‘오페라를 통해 본 의식주의 발전’ 같은 개념의 프로그램으로 학생의 진로를 열어주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 입시라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는 고교생이 이런 방식의 진로 교육에 선뜻 참여할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교육감은 이런 우려를 듣자 살짝 웃음기를 보였다.

“맞아요. 입시라는 현실을 무시할 순 없어요. 그러니 이런 교육을 잘 받고 그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자세히 적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대학 수시 입시에 유리하지 않겠어요? 수시에선 자신의 진로를 미리미리 꼼꼼하게 준비한 학생에게 유리하니까요.”

특히 고교와 달리 좋은 실험 기구를 갖춘 대학에서 진행되는 강좌가 많아 학생들의 집중도와 교육 효과가 높다는 게 이 교육감의 판단이다. 이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동기’를 찾는다는 설명이다. 선진국일수록 학생에게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이유를 알려주고 이를 추구할 방안을 제시해준다. 이 교육감은 “국영수에 이런 동기가 있나”라고 반문하며 “사회와 인생을 향한 ‘동기’가 우리 학생에게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학부모로, 전국으로 확대

이 교육감은 ‘경기 꿈의 대학’ 프로그램을 2, 3년 내에 4000개로 확대할 생각이다.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화, 세분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진로 교육 프로그램도 그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른 지역 학생도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학부모와 노인을 비롯한 그 누구라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각자의 진로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게 이 교육감의 목표다. 우선 온라인 개방형 강좌인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처럼 인터넷에 기반한 강의 체제를 갖추는 방안은 내년에 추진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직접 확대해 나가는 한편 지역 사회와 기업, 사회단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런 의미의 진로 교육은 학교 울타리 안에만 있는 게 아니죠. 대기업이나 언론은 물론 마을의 오랜 상점에서도 학생 진로 교육의 한 축을 맡아주어야 합니다.”

이 교육감은 진로 교육을 시작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털어놨다.

“교사의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죠. 학교에 각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지 진로 교육을 전담할 교사는 없어요. 하지만 이런 현실을 빨리 타개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으니 나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이 교육감은 진로 교육은 지역 특성이 잘 반영되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래야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지역 특성을 익힌 융합형 인재가 태어날 거란 믿음 때문이다. 그는 “학생이 교사는 물론 다양한 진로 교육 선생님과 지리산을 종주하고 해외로도 나가 현지에서 생생한 체험을 통해 도전과 용기를 기르는 방향으로도 진로 교육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