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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땅에 작물 자라니 동네 생기”

입력 | 2017-06-21 03:00:00

서울 ‘행촌권 성곽마을’ 도시농업 1년




13일 서울 종로구 행촌권 도시농업시범마을 육묘장에서 주민들이 어린모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멀리 광화문광장 주변에 펼쳐진 빌딩 숲이 ‘울창하다’. 남산타워도 한눈에 들어온다. 분명 서울 도심 한복판 풍경인데 주변을 둘러싼 건 초록의 밭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여유롭게 작물을 돌보는 주민이 있는 이 동네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시골마을에 온 듯하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일로의 고층 아파트단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50m²의 육묘장(育苗場)에는 감자, 고구마, 토마토 등 다양한 종류의 어린모가 자라고 있었다. 주민들이 모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육묘장을 나와 조금 걷자 넓은 약초밭이 나왔다. 표고버섯, 백수오, 감초같이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작물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서울시가 최초로 지정한 도시농업 시범마을인 ‘행촌권 성곽마을’이다. 시가 주민과 함께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종류의 농작물을 재배한다. 농업전문가들이 주민을 대상으로 도시에서 농사짓는 방법을 정기적으로 교육한다. 대부분 생업과 농사일을 병행하지만 농사만 짓는 주민도 15명이나 된다. 입소문을 타면서 지방에서 이 마을로 농촌 견학을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직 큰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그래도 마을에서 재배한 농작물은 자치구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주택가 옥상 텃밭에서 주민들이 농작물을 돌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행촌권 성곽마을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버려진 땅이 많았다. 바로 옆에 뉴타운이 들어섰지만 지대가 높은 데다 성곽까지 끼고 있어 개발이 어려웠다. 주변 동네에 비해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종로구와 서울시는 고민 끝에 마을의 버려진 공터를 텃밭으로 바꾸는 도시재생사업을 하기로 했다.

마을의 한양도성 성곽 길을 따라가며 주변에서 자라는 작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양봉장(養蜂場)도 있다. 농사는 주택가에서도 짓는다. 연립주택 옥상으로 올라서자 화분 여러 개에 고추 오이 등 채소가 자란다. 건너편 주택 옥상도 비슷한 풍경이다. 마을은 대부분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이어서 거주하는 모든 가구가 동의할 때만 옥상텃밭을 만든다.

1년 새 마을은 많이 바뀌었다. 김동수 행촌권 성곽마을 도시농업공동체 대표는 “쓰레기더미가 쌓이던 공터에 식물이 자라면서 동네에 생기가 돌고 주민들도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교류가 잦아지자 사이도 두터워졌다. 50년 넘게 마을을 지킨 김두옥 씨(80)는 “농사를 지을 때는 서로 돕고, 수확할 때는 서로 나누면서 주민들끼리 더욱 돈독해졌다”며 “하루하루 마을이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이 마을에 연중 자동화 작물 재배가 가능한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또 250m² 규모의 청년 도시농부 임대주택을 조성할 계획이다. 셰어하우스 개념으로 함께 살면서 도시농업을 연구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송임봉 서울시 도시농업과장은 “도시농업마을사업은 도시재생과 도시농업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라며 “체험거리 등을 확대해 시민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