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컴퓨터와 옷가지 및 각종 짐을 쌓아놓은 작은방은 결혼해서 출가하기 전까지 막냇동생이 썼다. 부팅시키는 데만 해도 시간이 걸리는 오래된 컴퓨터를 사용하려고 앉아 있다 보면 벽의 절반 정도나 차지하는 세계전도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저런 큰 지도를 구해다 비닐 표구까지 해 놨을까. 지금은 색도 변하고 낡았지만 크기나 형태 때문인지 그래도 세계전도로서의 위풍만은 잃지 않은 듯 보인다. 동생에게 슬쩍 물어보았더니 나중에 세계를 일주해야지, 하는 원대한 마음으로 대학교 1학년 때 그 전도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낯선 도시에 가면 휴대전화로 구글 맵이나 다른 길 찾기 앱으로 모르는 데를 성큼성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어째서인가 나는 방향 감각이 없는 데다 지도도 종이로 된 종류만 간신히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익숙한 데라도 종이로 된 지도, 교통 노선도는 꼭 챙겨 갖고 다닌다.
한동안 보고 있던 지도를 접을 때 아, 하고 깨닫게 된다.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접힌 데마다 지도의 귀퉁이들은 닳아 있거나 찢어져 있다. 그러나 거기엔 스스로 발견하고 표시해둔 장소들이 점처럼 그려져 있고 그건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개인의 경험이 모인 또 다른 지표로 남는다. 예술적인 동시에 실용적인. 심보르스카의 “나는 지도가 좋다”라고 시작하는 위의 시 마지막 행은 이렇다. “또 다른 세상을 내 눈앞에 펼쳐 보이니까.”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