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행촌동 은행나무 언덕에 있는 딜쿠샤 건물. 1923년 건축된 서양식 주택이다.
1923년 건축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서양식 주택이다. 건물을 지은 사람은 당시 서울에서 UPA통신사(UPI의 전신) 특파원으로 일했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그는 건물 초석에 ‘DILKUSHA 1923’이라 새겨 넣었다. 인도의 딜쿠샤 궁전에서 따온 힌디어로, 이상향 기쁨 행복이란 뜻이다.
딜쿠샤의 의미와 달리 테일러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그의 아들이 태어났다. 그때 병원에서 간호사가 숨겨놓은 3·1독립선언서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테일러는 3·1운동에 감동했고 곧바로 이 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제암리 학살사건 등 일제의 만행도 널리 알렸고 지속적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일제가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일제는 1941년 그에게 조선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테일러는 거부했고 이로 인해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곤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딜쿠샤 건물은 단아하다. 살짝 변화를 주면서 쌓아 올린 붉은 벽돌에,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외관. 당시 건물 2층에서는 한강까지 시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사람들이 무단 점유하면서 건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점유자는 한때 18가구에 달했다고 한다. 국유임에도 무분별한 점유로 인해 내부는 적잖이 훼손되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딜쿠샤를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아직도 한 가구가 이곳에 남아 있지만, 오랜 노력 끝에 무단 점유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다. 이에 힘입어 딜쿠샤 건물은 곧 문화재로 등록된다. 동시에 2019년까지 보수 복원에 들어간다.
며칠 전 해질 무렵 딜쿠샤를 찾았다. 내부는 황량하고 나무 계단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2년 뒤 테일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어둠이 내리자 놀랍게도 건물 모퉁이 가로등에 노란 불이 들어왔다.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초록 은행잎이 밝게 빛났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