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고시 개정안 행정예고… 박근혜 정부때 고친 내용 원상복구
국정기획위 통신비 절감 대책 등 여소야대 속 국회 입법 피해
시행령-규칙 손질해 정책 실행… 무리한 추진 갈등만 키울수도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규모유통업법 과징금 고시 개정안을 다음 달 12일까지 행정 예고한다고 22일 밝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주요 부처는 이처럼 법률안 개정이 아닌 시행령·고시 개정을 통해 주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강(强) 대 강(强) 여야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법률 개정안의 처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져 정부 부처가 국회 동의 없이 자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정책부터 우선적으로 시행에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회 우회 현상’이 결과적으로 민감한 정책 추진을 뒤로 미루는 것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용카드 가맹점 우대수수료 확대 등 이해당사자 간의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정책을 국회 논의 절차 없이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향후 갈등이 오히려 커질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갑(甲)질 행위’에 대한 과징금 기준이 법 위반 금액의 30∼70%에서 60∼140%로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과징금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판매촉진(판촉) 비용을 납품업체에 떠넘기거나 납품업체의 경영정보 등을 부당하게 요구할 경우 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이는 전임 정부 때인 지난해 6월 과징금 산정 기준을 ‘납품대금’에서 ‘불법 행위와 직접 관련된 금액’으로 개정한 것을 원위치시킨 조치다. 지난해 개정안을 처리할 당시 기업이 내야 할 과징금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는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할 때 부과하는 과징금의 상한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도 함께 내놓았다. 반복적으로 법을 어긴 기업에 대해 과징금의 최대 100%에 해당하는 추가 과징금을 물릴 수 있게 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취임 이후 “행정력을 바탕으로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고 공정위 소관 하위 시행령 등을 개선하면서 재벌 개혁의 효과를 내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 “파급력 큰 사업, 국회 거쳐야”
국정기획위와 다른 부처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정기획위가 22일 발표한 통신비 절감 대책은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과 고시를 개정해 시행할 사안이다.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 역시 미래창조과학부 고시로 결정된다.
하지만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이 남발되는 데 따른 우려도 제기된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 등 파급력이 큰 사업들이 입법기관에서의 공론화를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과징금의 경우 공정위가 기업에 무리하게 적용하다가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찬반이 첨예하게 나뉘거나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국회 논의를 거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세종=천호성 thousand@donga.com / 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