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엠블럼 만든 디자인계 거목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엠블럼을 디자인했던 양승춘 서울대 명예교수가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대의 마지막 학사 교수로도 알려져 있다. 양진모 씨 제공
양 교수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의 1세대 디자이너로 꼽힌다. 1965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 OB맥주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그는 국내에 기업이미지(CI)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등 대기업의 초창기 CI는 대부분 양 교수의 손을 거쳤다. 한국주택공사 한일은행 국립현대미술관 등 그가 이끈 CI 작업은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았다.
디자인만큼이나 강단에서의 자취도 남달랐다. 1968년 그는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 교수에 임용됐다. 대학 졸업 3년 만이다. 학사 학위가 전부인 걸 감안할 때 파격적인 부임이었다. 37년간 강단을 지킨 양 교수는 2005년 서울대 마지막 학사 교수로 퇴임했다.
정년퇴임 후에도 강단을 떠나지 않았다. 2008년 서울과학기술대 나노IT융합대학원이 개원했을 때 5년간 전통 디자인 강의를 진행했다. 당시 양 교수에게 강의를 부탁했던 나성숙 서울과기대 디자인학과 교수는 “양 교수님은 학생들을 정말 사랑했던 분”이라며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나 교수는 “지금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분”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논문을 쓰는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2주에 한 번씩 고민을 상담하고 참고서적을 추천했다. 나아가 박사과정 학생들의 논문 작성을 돕는 사단법인 설립도 시도했다. 그러나 3년 전 양 교수가 위암 수술을 받으면서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22일 오전 발인을 마친 후 양 교수의 장남 양진모 씨(50)는 “아버지의 원동력은 ‘즐거움’이었다”며 “디자인 작업을 워낙 좋아하셔서 한창 때는 며칠 밤을 새우며 작업하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최근까지 한 인테리어 전문 업체의 고문으로 회사 일을 도왔다. 진모 씨는 “나이가 드셔서 밤샘 작업은 못 하시니 제가 도와드리곤 했다”며 “제 옆에 앉아 지켜보면서 마음에 안 들면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이리 줘봐’ ‘넌 아직 실력이 멀었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