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 국제부 기자
지역 패권, 영토, 종교 때문에 발생하는 중동의 라이벌전과 이로 인한 갈등은 지금까지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미래에도 확실한 대안이 없다. 전 세계가 중동을 ‘화약고’로 지칭하며 불안해하는 이유다.
하지만 중동에는 또 다른 라이벌 관계가 있다. 2000년대 들어 부각되기 시작한 이 라이벌전은 충돌과 갈등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 라이벌 관계가 장기적으로 중동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기대도 있었다. 바로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간의 중동의 ‘허브(Hub)와 탈(脫)석유화’ 주도권 경쟁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지식산업 육성 경쟁도 남달랐다. 카타르는 ‘에듀케이션시티(Education City)’를 조성해 코넬대, 조지타운대, 노스웨스턴대, 카네기멜런대, 텍사스A&M대 등의 분교를 유치했다. UAE는 ‘놀리지 빌리지(Knowledge Village)’를 중심으로 아메리칸대, 미시간주립대, 호주 울런공대 등의 분교를 만들었다.
특히 카타르는 에듀케이션시티 내에선 철저한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또 2010년 설립한 하마드빈칼리파대의 초대 인문사회대 학장에 젊은 자국 여성을 임명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중동의 CNN으로 통하고, 서구 언론도 인정할 만큼 자유로운 취재보도를 강조하는 ‘알자지라 방송’이 카타르에서 탄생한 것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달 5일 사우디가 주도해 발생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카타르 단교 사태’는 카타르의 개방적인 외교(이란과의 관계 개선)와 개혁 조치(언론 자유 등)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이슬람권 국가 지도층의 불편한 감정이 표출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 등 강경파 이슬람 국가들이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카타르와 UAE가 앞장서서 추진해온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변화 움직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어떤 형태로든 카타르의 개혁 개방 움직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단교 조치에 참여한 개혁 개방 경쟁국 UAE도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