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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베 교수 “日헌법에 자위대 존재 명기순간 제어하기 힘들어져”

입력 | 2017-06-24 03:00:00

[토요일에 만난 사람]아베 개헌 시도에 반대하는 헌법학자 하세베 교수




15일 연구실에서 만난 하세베 야스오 와세다대 교수는 “아베 신조 총리는 비합리적인 정념(감정적인 개인 생각)으로 개헌에 집착하고 있다. 재임 중에 어디든,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또 “일본에는 약 500명의 헌법학자가 있는데 아베 총리의 개헌안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95%는 지금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위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분명히) 헌법 위반입니다. 법적 안전성을 크게 흔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6월 일본 중의원에서 열린 헌법심사회 회의에 불려 나온 헌법학자 하세베 야스오(長谷部恭男·당시 59세) 와세다대 교수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자 자민당 의원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는 집단적 자위권을 골자로 한 새 안보법안이 최대 이슈였다. 이를 추진하던 집권당이 부른 참고인이 국회에서 “이 법안은 위헌”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난 후 자민당은 “참고인을 잘못 골랐다”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 언론에선 ‘자민당이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평가했다. 이날 회의에 출석한 저명한 헌법학자 3명이 모두 법안이 위헌이라고 밝힌 것은 안보법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부었고 이후 12만 명이 국회를 둘러싸는 대형 시위로 발전했다.

하세베 교수는 요즘 언론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개헌 시도를 앞장서 비판하고 있다. 일본 헌법학자 5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전국헌법연구회 대표도 맡고 있다. 15일 도쿄(東京) 신주쿠(新宿)구 와세다대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난 하세베 교수는 “아베 총리는 합리적 설명 없이 어디든, 어떻게든 고치겠다는 집착에서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 매우 위험한 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정권, 할 일 안 하고 안 해도 될 일에 몰두”

여러 차례 헌법을 바꾼 한국과 달리 일본이 70년 동안 한 번도 헌법을 바꾸지 않은 배경부터 질문했다. “국내외 사정이 달라진 만큼 시대에 맞게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주장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하세베 교수는 “헌법은 중장기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와 정치의 대원칙이기 때문에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체제 교체)’와 함께 전면적으로 바뀐다”며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아직까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70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세탁기, 냉장고와는 다르기 때문에 연한이 됐다고 바꾸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헌법을 고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발의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수가 동의해야 한다. 이를 두고 아베 총리 등 자민당 우익 진영에선 ‘지나치게 바꾸기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하세베 교수는 “헌법을 바꾸기 힘들게 한 것은 누가 정권을 잡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룰이기 때문”이라며 “아베 정권은 막대한 재정적자 같은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내버려두고, 바꾸지 않아도 될 헌법에만 몰두한다. 누가 봐도 이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화헌법 개정하면 자위대 제어 못할 것”

현행 헌법은 9조에서 무력 사용과 전력(戰力·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전력’에 해당하는 자위대가 위헌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세베 교수는 자위대의 존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헌법학자 중 70%가량은 지금의 자위대가 위헌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다 같은 견해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조직을 갖는 자체를 위헌이라 하고, 일부는 자위 조직은 괜찮지만 지금처럼 큰 규모는 위헌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개별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조직은 합헌이라고 보지만 집단적 자위권(동맹국이 공격을 받았을 때 자국에 대한 침략 행위로 보고 반격할 권리)을 행사하는 지금의 자위대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다고 자위대를 없애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국민들에게 물어보면 자위대를 없애지 말자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고 위헌이라는 헌법학자들조차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 9조에 자위대 관련 규정을 추가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계획에 대해선 “자위대의 존재를 지금까지 명기하지 않은 것에 의의가 있다”며 반론을 폈다.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지금까지 자위대의 개별 활동에 대해 일일이 국회에 설명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가 명기되면 앞으로는 자위대를 제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 비합리적으로 개헌에 집착”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중국의 해양 진출을 거론하며 “일본의 안보 환경이 불안해졌으니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하세베 교수는 “과거 냉전 때가 더 불안했다. 그때는 당장이라도 소련이 침공해 올지 모르는 분위기였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 자위대의 존재를 그대로 헌법에 넣을 뿐인데, 그게 어떻게 안전 보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넣으면 자위대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복무하게 될 것”이란 개헌 세력의 주장에 대해선 “거꾸로 자위대의 존엄을 짓밟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안보 문제에 자위대원의 긍지 같은 정서론을 들고 나오는 건 위험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정서론을 들이대면 하게 된다. 전전(戰前)의 일본이 그랬다”고 강조했다.

하세베 교수는 “아베 총리가 제안한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일본 국내에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그대로의 자위대를 인정해 달라는 제안이 국민에 의해 부결된 셈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위대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건지, 집단적 자위권이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이 부정당한 건지 알 수 없게 돼 버린다. 아베 총리는 거기까진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대학교육 무상화, 긴급사태 조항 ‘필요 없어’

아베 총리는 개헌 때 대학교육 무상화 조항과 대규모 재해 발생 시 긴급사태 조항 등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한다. 9조(무력 사용과 군대 보유 금지) 변경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술책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세베 교수는 “헌법에 고등교육 무상화라고 써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다. 반대로 재정이 뒷받침되면 굳이 헌법에 쓰지 않아도 된다”며 개헌의 이유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 절반가량이 대학에 진학하며 졸업 후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다. 미래가 보장된 사람을 위해 국민 전체가 세금을 부담하는 게 맞는가”라고 반문했다.

대학 등록금을 재정에서 부담하면 정부 입김이 대학의 자율성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지금 아베 정부라면 분명히 정부에서 말하는 대로 가르쳐 달라고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긴급사태 조항에 대해서도 “현재대로라도 문제가 없다는 게 여러 헌법학자의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정치가, 공무원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거꾸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가케(加計)학원 스캔들(아베 총리가 지인이 이사장인 학교법인에 수의학과 신설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서 보듯 “사회 일반의 이익보다 주변 사람들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헌법학자 95%는 집단적 자위권 위헌이라 생각”

2년 전 국회에서 소신을 밝힌 후 하세베 교수는 아베 정권의 반대편에 선 대표적 지식인이 됐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참고인석에 앉기 전까지 자민당 추천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진술이 바뀌진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당시 참고인 3명이 모두 여당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하자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전혀 위헌이 아니라는 헌법 학자도 많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정작 이름을 대 보라고 하자 몇 명 대지 못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하세베 야스오는…

헌법학자. 1956년 히로시마(廣島)현 출생.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가쿠슈인(學習院)대 법학부 교수, 도쿄대 법학부 교수 등을 거쳐 현재 와세다대 법학학술원 교수. 국제헌법학회(IACL) 부회장을 지냈으며 일본 헌법학자 단체인 전국헌법연구회 대표. 아베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시민단체 ‘입헌민주주의 모임’의 발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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