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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경영의 혁신 도구, 디자인

입력 | 2017-06-26 03:00:00


주성원 산업부 차장

지난해 8월. 경북 고령 소재 중소기업인 대한특수금속의 변재욱 대표(49)가 디자인스튜디오 BKID 송봉규 대표(38)를 찾았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송 대표에게 변 대표는 대뜸 “무쇠를 소재로 ‘리빙 제품’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1973년 설립된 대한특수금속은 철을 주조해 산업용 부품을 만드는 주물 전문 회사다. 선박과 자동차 부품 등을 주로 생산하는 전형적인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다. BKID는 디자인컨설팅을 하면서 전자제품과 가구 등을 디자인해 온 디자인 회사.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회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대한특수금속은 공장 입구에 ‘You imagine, We cast’라는 슬로건을 걸어둘 정도로 기술력만큼은 자부심을 가진 회사다. 영업도 순조로웠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조선, 건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한때 500억 원에 육박하던 매출이 300억 원대로 줄었다. 변 대표가 소비재 시장 도전을 구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2세 경영인인 변 대표는 창업주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년 전부터 이 회사를 운영해 왔다. 그는 “미국 ‘랏지’나 프랑스 ‘르 크루제’ 같은 주물 주방용품을 보면서 ‘우리도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방용품으로 제품을 한정 지을 이유도 없었다. 다만 구상을 현실화할 디자인이 문제였다. 그가 송 대표를 찾은 까닭이다.

제안을 받은 송 대표는 주물을 통해 생산되는 무쇠에 관심을 가졌다. 전통적이지만 요즘은 자주 사용되지 않는 소재다. 이 소재를 가지고 주방용품뿐 아니라 의자, 화분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다. 송 대표는 “다른 소재에 비해 무겁기 때문에 좁고 긴 형태의 작은 제품도 쉽게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MM’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무쇠가 소재(Moosse as basic Matter)’라는 단순하지만 정확한 뜻이다. 몇 개월 동안 개발 과정을 마친 MM 제품은 최근 서울 시내 몇 군데 인테리어숍에 납품됐다. 조만간 온라인 쇼핑몰도 열 계획이다. 이제 첫발을 디딘 셈이지만 변 대표는 “10년 뒤에는 회사 매출의 절반은 소비재에서 나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MM의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성장을 멈춘 기업이 ‘디자인’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간재 중소기업’이 ‘혁신 도구’로 디자인을 선택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례다. 디자인 경영 전문가인 에린 조 미국 파슨스대 교수(전략디자인경영학)에 따르면 성장 가능성이 있는 발명을 혁신으로 전환시키는 데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동아비즈니스리뷰 116호)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요즘, 많은 기업이 디자인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최근 출시한 기아자동차 ‘스팅어’는 품질이나 안전을 강조하던 기존 세단과 달리 감각적인 디자인과 성능을 내세워 감성에 소구한 차다. LG전자의 프리미엄 브랜드 시그니처는 모든 제품이 IF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해 디자인 역량을 과시했다. 성공한 제품 뒤에는 디자이너가 개발 초기 단계에 참여해 혁신을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디자인만이 혁신의 방향은 아니겠지만, 혁신 방향 중 하나에 디자인이 포함되는 것은 분명하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