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드 서울 권태훈 황효철 지음 아키트윈스·2017년
황두진 건축가
그런 생각은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무너진다. 어디를 봐도 눈길 끄는 화려한 건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반대다. 설명을 읽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 있는 건물인지조차도 알기 어렵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서울 구도심의 낡고 초라한 건물들이다. 건물명이랄 것이 없고 있어봐야 독자들이 알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건물명 대신 주소만 기재했다. 을지로 123, 칠패로 12-16, 만리재로 188, 두텁바위로 160….
좀처럼 눈여겨보지 않을, 서울 도심 낡은 건물의 짜임새와 숨은 가치를 찬찬히 뜯어 살피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아키트윈스 제공
수록된 도면들의 완성도는 한마디로 압권이다. 기계적 정확성, 부분과 전체의 관계 밝힘, 빛과 그림자의 구분, 선의 위계 등 모든 요소가 엄격한 통제 속에서 풍성한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타일 줄눈의 선을 따라가다 보면 창틀이 구성되고, 그것들이 모여 다시 건물 전반의 구조로 이어지다가 어느덧 외곽선을 이뤄 건물 밖 도로와 만난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납작한 2차원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3차원이다.
건물이 돌과 콘크리트와 유리로 구성된 실물이라면, 건축은 조직화된 정보다. 정보는 실물과 또 다른 그 자체의 독자적 생명과 의미를 갖는다. 그 어떤 말로도 이 책처럼 건축의 생명력을 잘 보여주기 어렵다.
이 책은 통상적인 건축 도면 자료집이 아니다. 도면 형식을 빌린 회화다. 정보의 가치 못잖게 미학적 가치를 추구했다.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결국 사라져가는 평범한 건물에 질서와 비례로 충만한 수많은 소우주가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접하고 나면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질 거다. 소우주를, 어떻게 쉽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
황두진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