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현대자동차 엘란트라 TV 광고 중 한 장면. 독일 아우토반에서 엘란트라(아래 차)가 포르셰911과의 속도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다가 과장광고 논란을 불렀다. 현대자동차 제공
독일 뮌헨 인근의 도로.
“아우토반, 속도는 무제한 성능은 최대한!”이란 음성과 함께 멀리서 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질주해온다. 이를 보고 놀란 포르셰911 운전자는 질세라 가속페달을 밟는다. 두 차가 벌이는 살벌한 속도전. 엎치락뒤치락 끝에 정체불명의 차가 앞질러 나간다. 열심히 따라가던 포르셰는 결국 뒤처진다. 포르셰 운전석의 외국인은 패배를 시인하듯 경쟁 차를 바라보더니 엄지를 ‘척’하고 치켜든다. ‘당신의 승리’라는 뜻. 그때 나오는 장엄한 멘트.
“세계의 명차와 함께 달린다. 고성능 엘란트라.”
이 광고 때문에 현대차는 오히려 굴욕을 맛봤다. 포르셰 운전자가 치켜든 엄지손가락이 “나는 기어 1단 넣고 달렸다”는 의미라는 조롱 섞인 농담이 PC통신에 퍼졌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제조업체 포르셰와 후발주자 현대차 사이의 격차만 부각시킨 꼴이었다.
이랬던 현대차가 26년이 지나 정말 포르셰를 제쳤다. ‘속도’ 이야기는 아니다. 품질에 관해서다.
최근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제이디파워(J.D.Power)의 올해 신차 품질 조사에서 기아자동차가 종합 1위, 현대차의 고급브랜드 제네시스가 2위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의 두 브랜드가 나란히 1, 2위를 석권한 것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기아차에 밀려 2위로 떨어진 포르셰는 올해 처음 데뷔한 제네시스에도 밀려 3위로 떨어졌다. 포르셰는 같은 조사에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7번이나 1위를 한 전통의 강자다. 나머지 3번은 일본의 렉서스였다.
조사결과는 현대차그룹 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세계 판매 5위 브랜드인지라 웬만한 결과에는 크게 놀라지 않는다. 해외 품질상을 받거나 개별 차종이 판매 1위에 오르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이번에 기아차와 제네시스가 포르셰를 누른 제이디파워 발표에는 남달랐다. 그룹 관계자는 “결과를 접하고 너무 기뻤다. 우리가 국위 선양을 한 기분”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의 설움을 털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엘란트라와 포르셰가 경쟁한 26년 전 광고도 온라인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세계 판매 1위는 폴크스바겐그룹(1031만 대), 2위 도요타(1017만 대)였다. 현대·기아차는 788만 대(5위)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품질에서 포르셰를 제친 것처럼 판매량에서도 폴크스바겐과 도요타를 제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