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크노프, ‘내 마음의 문을 잠그다’.
페르낭 크노프(1858∼1921)는 벨기에 상징주의 미술의 대표 인물입니다. 화가는 아카데미즘과 아방가르드, 궁극적 아름다움과 사회 변혁의 의지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미술가는 보수적 성향의 상징주의 예술 단체 ‘장미십자회’의 일원이었어요. 또한 전위적 성격의 미술 그룹 ‘레 뱅’의 회원이기도 했지요. 유미주의적 성향이 강한 미술을 선보였던 화가 앞에는 간혹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일탈적 미술에 염세주의적 시각뿐 아니라 유토피아적 이상을 담고자 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볼 수 있는 세상 저편과 알 수 있는 세계 너머를 예의 주시했던 미술가는 문학에서 많은 예술적 자극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의 문을 잠그다’도 미학적 착상을 문학에서 얻었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가 쓴 종교적 구원의 시, ‘누가 날 구원할까’가 그림에 영감을 제공했지요. 미술가는 시가 전하는 우울함과 강렬함에 사로잡혀 아예 시의 한 구절을 그림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화면에 마른 오렌지빛 백합을 세 차례 규칙적 간격으로 등장시켜 시적 운율을 그림에 부여하려고도 했어요.
종강과 함께 일상이 숨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분주함이 한풀 꺾이자 성과와 실적, 책임과 의무로 급격히 불어난 삶의 몸집에 비로소 눈길이 갑니다. 삶의 적정 체중을 되찾을 방법을 고민하다 화가의 대표작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밀실로 들어가 광장의 삶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힘을 회복할 적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끝>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