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FTA 충돌 예고… 문재인 대통령 “이익 균형” 백악관 “車-철강 재논의”

입력 | 2017-06-30 03:00:00

[문재인 대통령 訪美 첫날]트럼프 30일 회담서 ‘무역격차’ 꺼낼듯




30일(현지 시간)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당초 예상과 달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나 북핵 문제보다 무역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이 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 발효 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늘어 손해가 크다’고 주장하는 미국을 합리적 근거로 설득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역 격차 해소를 두고 한미 양국 간의 견해차가 예상보다 커서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재논의” vs “필요 없어”… 정반대 메시지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한미 양국은 한미 FTA와 관련해 180도 다른 메시지를 내놨다. 백악관 핵심 관계자는 28일 전화 브리핑에서 한미 간 무역 이슈가 이번 회담에서 집중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문제를 한국과 솔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은 한미 무역관계가 불균형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역 문제에 대해 미국 측이 공세적인 입장을 띨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축소와 한미 FTA 재협상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무역 문제’라고 표현했지만 미국 측이 협상에서 요구하는 것은 한미 FTA의 재논의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회담 사전 브리핑에서 무역 이슈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무역 이슈를 통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분명히 밝히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한국은 회담 직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FTA 재협상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는 전세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의 한미 FTA는 양국 간 이익 균형이 잘 맞춰져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 FTA의 효과를 강조하면서 회담 의제로 한미 FTA 재논의를 꺼낼 필요가 없음을 에둘러 표시한 것이다. 이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FTA 문제를 꺼내면 올해 들어 미국의 무역적자 폭이 줄어들고 있고 한국의 대미 투자가 늘면서 고용이 늘었다는 점을 충분히 납득시킨다면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자동차 철강 등 구체적 품목까지 거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이던) 2011년 한미 FTA를 강행 처리했다. 그 협정은 재앙이었다”며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드러냈다. 올해 4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는 “끔찍한 한미 FTA는 조만간 재협상하거나 폐기하겠다”고도 했다. 미국 측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는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백악관은 구체적인 품목까지 꼽아가며 FTA 개정에 나설 뜻을 시사했다. 백악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자동차 문제,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 자동차 판매에 여전히 장벽이 존재하고 때로는 한국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철강 제품의 양이 과도하다는 사실 등에 관해 솔직 담백하게 얘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와 철강 등 한미 FTA 재논의를 위한 각론까지 준비해 두었다는 의미다.

미국은 또 정상회담에서 쇠고기 등 농산물의 관세 인하 기간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한국 내 빗장을 열라는 압박을 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이 문제를 제기한 법률, 금융 등 서비스 시장 추가 개방 문제 역시 회담장에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압박은 강해지는데 주무 부처 장관도 임명 안 돼

미국이 한미 FTA 재개정 요구를 하는 이유는 양국 간 무역 역조 때문이다. 2011년 116억 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2015년 258억 달러로 늘어났다. 한국 측은 무역 역조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33억 달러로 1년 전보다 9.7%가량 줄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무역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며 설득에 나섰다. 여기에 중국 일본에 비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작고 서비스 수지는 한국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점도 미국 측에 강조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가 한미 양국 통상 문제에 제대로 준비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한미 FTA를 담당하는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아직도 임명되지 않았다. 경제부처 장관급 인사 모두 방미단에서 제외된 채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 재개정 요구에 맞서야 하는 점도 문제다.

정부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상교섭 기능이 산업부에 남는지 외교부로 이관되는지 여부를 놓고 진통을 겪었고, 지금은 사실상의 장관 부재로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산업부가 한미 FTA 문제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천호성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