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업 진출 60주년 기념식 참석… 당시 ‘지남호’ 선원 3인의 회고
1957년 6월 29일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인 지남호 선원들이 부산항 1부두에서 선상 출항식을 하고 있다. 지남호는 108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그해 10월 14일 부산항에 귀항했다(첫번째 사진). 그날 지남호에 탔던 옛 선원들이 29일 국립해양박물관의 원양어업 진출 기념비와 조형물 앞에 섰다. 왼쪽부터 지남호 냉동사 이정현(85), 어업지도관 이제호(89), 통역관 안승우 씨(85). 한국원양산업협회 제공
“참 젊었지. 해외에 나가 고기를 잡아본 적도 없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어. 오히려 뭔가를 도전한다는 생각에 설렜지.”
29일 오후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열린 ‘원양어업 진출 60주년 기념식’에 지팡이를 짚고 온 이제호 씨(89)는 바다 쪽을 바라보며 첫 출항을 이렇게 회상하기 시작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지남호를 타고 첫 원양어업을 떠난 선원 중 3명이 초청됐다. 이제호 씨와 당시 냉동창고를 책임졌던 이정현 씨(85), 그리고 통역관으로 승선한 안승우 씨(85)다.
“처음엔 대만, 싱가포르 앞바다에서 그물을 쳤지만 생선이 올라오지 않아 실망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도양으로 나아갔지. 8월 15일 새벽 첫 생선이 올라올 때 모두가 환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원양어업 첫 수확을 광복절에 한 것이었다.
처음 잡아 올린 생선은 참치였다. 이제호 씨는 참치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기억했다. 지남호가 부산항에 돌아오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잡은 생선을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해무청 수산국은 부랴부랴 회의를 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튜나, 마구로라고 불렀지만 우리말 이름은 없어 고심이 컸어요. 그때 누군가 ‘참으로 좋은 고기’라는 뜻으로 ‘참치’라고 하자고 한 거요. 그렇게 결정했지요.” 이 씨는 이날 기념식에서 ‘원양어업 유공표창’을 받았다.
이정현 씨도 기억을 더듬었다. “정말 ‘이렇게 큰 생선이 잡히는구나’ 하고 많이 놀랐지요. 첫 항해였는데도 다행히 바다 날씨가 나쁘지 않았어요. 풍랑 같은 위험한 순간은 없었어요.” 그는 수산대 제조과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다 원양 항해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역시 수산대 어로과를 졸업한 안승우 씨는 배의 운영 원리를 아는 데다 독학으로 익힌 영어 실력이 뛰어나 선발됐다고 한다. 특히 지남호에서 참치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단 한 명이었던 모건 씨의 통역을 전담했다. 미국인 모건 씨는 당시 주한 경제조정관실 수산고문관이었는데 그전에 오랫동안 참치어선 선장이기도 했다. 안 씨는 “그때는 전쟁 후여서 어떻게든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지만 겁나지는 않았다.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배에 올랐다”라고 했다.
지남호는 미국 시애틀에서 건조된 230t급 ‘SS워싱턴호’를 1949년 들여온 것이다. 해무청과 제동산업이 미국 대외원조처 지원을 받아 참치 조업 시험 사업을 기획하며 탄생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부(富)를 건져오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 지남호는 인도양에서 10t가량의 참치 등을 잡아 출항 108일 만에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실제 조업 기간은 15일 정도였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