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논설위원
트럼프보다 버거웠던 부시
14년 전 노무현 대통령에겐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트럼프 못지않게 버거운 사람이었다. 40세 나이에 거듭 태어난(born again) 기독교 신자인 데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진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에 둘러싸인 부시였다. 아무리 ‘Mr. 예측불가’라 해도 비즈니스맨 출신 트럼프와는 딜(거래)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북한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신념의 근본주의자 부시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마냥 순탄할 리 없었다. 노무현은 부시의 심사를 건드리는 말도 거침없이 쏟아놓았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무기 개발이 방어용이라는 북한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가 부시를 만나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부시를 끈질기게 채근해 앞으론 언론에 ‘Mr. 김정일’로 호칭하겠다는 마지못한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최악의 만남은 2005년 북핵 6자회담이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로 벽에 부딪힌 이후 열린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굳은 얼굴로 험한 논쟁을 벌였다. 노무현은 “각하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고려나 전술적 접근보다는 철학적으로 김정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고 던졌고, 부시는 “맞다. 나는 싫다면 싫다. 둘러대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이후 노무현은 부시와의 회담을 극도로 꺼렸다. “만나봐야 서로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만 더 멀어질 것이다”라며 거부했다. 송민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의 거듭된 건의에도 “왜 자꾸 대통령을 갋으려 하느냐”고 짜증을 냈다. 결국 “귀찮아서 안 되겠다”며 수락했고, 10개월 만에 이뤄진 재회동은 성공적이었다.(송민순 ‘빙하는 움직인다’)
노무현은 미국인을 만나면 자신의 성향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애를 썼다. 임기 말엔 “나는 요구가 많은 친미주의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굵직한 친미적 정책이 모두 그의 재임 시절 이뤄졌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하지만 “반미면 어떠냐”던 그가 친미를 자처한 진짜 이유는 미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북한을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6자회담에서 북한은 오직 미국만 상대하려 했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재인표 대북정책도 미국 없이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