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동욱의 궁시렁궁시렁]무용은 젊음의 예술? 무용은 시간의 예술이다

입력 | 2017-07-02 17:23:00




#1

6월 19,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죽음과 여인’이라는 신작 발레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수석무용수 김세연(38)의 안무 데뷔 작품입니다. 데뷔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김세연은 “‘죽음과 여인’은 죽음 자체에 천착하는 작품은 아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간이 좀더 의미를 가진다는 이야기를 춤으로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눈길을 끈 무용수는 발레리나 임혜경(46)입니다. 1998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해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다 2010년 39세의 나이로 은퇴했습니다. 그 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무대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현역 때보다 많은 무대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무대에 올랐습니다.

출연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임혜경은 작품의 무게를 잡아주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그 나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간 위에 춤추는 듯한 우아함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2

김주원(40)은 6월 8~18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컨택트’에 출연했습니다. 작품의 가장 중심 배역인 ‘노란 드레스 여인’을 맡았습니다. 컨택트는 김주원에게 2010년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김주원은 “몸의 언어를 통해 다른 장르의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다음에도 몸 관리가 잘 된다면 또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의 성공한 광고인이지만 속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남자주인공은 수차례 자살 시도 끝에 절망과 우울함으로 방황하다 우연히 들어간 한 재즈바에서 꿈의 이상형, 춤추는 노란드레스의 여인을 만난다는 내용입니다.

노란드레스로 분한 김주원은 신비하면서도 고혹적이고 섹시한 매력을 대사 없이 춤으로만 보여줍니다. 존재감이 꽤 강렬해서 공연이 끝난 뒤 생각나는 것은 ‘노란드레스’밖에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3

지난달 25일까지 열렸던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안무가 김용걸(44)의 ‘스텝 바이 스텝’(6월 17, 18일)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무용단에서 주역이 아닌 군무로 활동했던 한 발레리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올해 3월 국립발레단에서 주로 군무를 맡다 은퇴한 발레리나 이향조(38)가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발레에 입문한 이향조는 성실함 덕분에 국내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며 2003년 국립발레단 정단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15년간 주로 군무로 활동하다 은퇴했습니다.

이향조는 “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여러 번 주저했다. 이 작품을 만들며 내가 발레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무용수로서 무대에 설 일이 많진 않겠지만 계속 발레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4

지난달 23일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에서는 주역 중 하나인 프리기아 역으로 김지영(39)이 나섰습니다.

올해 프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김지영은 고난도 기술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는 손끝, 발끝의 선과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했습니다. 프리기아 연기는 절제미와 담백함이 돋보였습니다. 겉으로는 정숙함이지만 내면의 섹시함을 표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김지영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발레다. 지금도 좀 더 춤을 잘 추고 싶다. 내가 이렇게 오래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나도 춤을 오래 출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발레를 비롯해 무용은 ‘젊음의 예술’로 불립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서 활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앞에서 얘기한 김세연, 임혜경, 김주원, 이향조, 김지영은 흔치 않은 30대 후반 40대 무용수들입니다.

비록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을지라도 이들의 원숙함과 노련함, 그리고 춤과 몸에 대한 깊이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마찬가지로 무용도 시간의 예술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꾸준한 자기관리로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후배 무용수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월 한 달 동안 이들을 무대에서 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김동욱 기자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