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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최저임금이 빈곤을 구제하는가

입력 | 2017-07-03 03:00:00


김유영 경제부 차장

요즘 서울 도심에선 ‘재벌 곳간 열어서 지금 당장 시급 만원’, ‘노동 소득이 늘어야 자영업자의 내일이 열립니다’라는 구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내건 현수막에 쓰인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노동계는 당장 시행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사용자 측이 내건 최저임금은 전년보다 2.4% 오른 6525원이다. 1만 원이 되면 인상률은 54.6%로 껑충 뛴다.

노동계의 요구대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 최저 수준의 생활은 보장될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사례를 참조할만 하다. 시애틀은 시간당 최저임금을 2015년 9.47달러에서 11달러로, 2016년 11달러에서 13달러로 잇달아 올렸다. 워싱턴주립대는 그 효과를 분석해 최근 발표했는데,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저임금 근로자(시간당 19달러 미만)의 월 소득이 125달러(6.6%)로 줄어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간당 임금은 3.1% 늘었지만, 근로시간이 9.4% 감소한 게 직격탄이 됐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2007년부터 최저임금을 적용한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노동경제학 권위자인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수도권 132개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의 임금과 근로시간 등을 추적했다. 그 결과 2007년 경비원 임금은 10.9% 늘었지만, 고용은 3.5~4.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부담을 피해 경비원을 줄이고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한 데에 따른 것이다. 남아 있는 경비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고령자가 대부분이지만 업무는 늘어나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빈곤문제의 해결수단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무조건 보호할 대상도 아니라는 연구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노동패널을 이용해 최저임금과 빈곤정책에 대해 연구한 결과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빈곤층이 아닌 경우가 전체의 69.5%나 됐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비율이 높아지는 등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면서 ‘저임금 근로자가 곧 저소득층’이라는 등식이 깨진 것이다. 남편이 전일제 근로자로 일하고, 아내가 시간제로 소득을 보완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현실이 이런 데도 빈곤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최저임금 정책을 쓴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제는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빈곤 해결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노동 시장과 가구 구조의 변화가 고려되지 못했다”고 지적할 정도다.
 
다시 민주노총의 현수막을 들여다보자. 최저임금 근로자의 98.2%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최저임금을 주는 사용자 중 대기업은 극히 일부고, 최저임금 인상분 대부분을 영세 사업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영업자의 과당 경쟁 등으로 ‘가난한 사장님’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당장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는 일보다는, 빈곤 위험에 처한 가구의 저임금 근로자들을 솎아내서 이들에게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혜택을 확대하는 등 가구당 소득까지 감안해 빈곤층을 보호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기업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기업 환경 개선에 나서는 일도 시급해보인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최저임금을 당장 1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선동일 수 있다.
 
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