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의원 선거 자민당 참패
1일 저녁 일본 도쿄(東京) 아키하바라(秋葉原)역 앞.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마이크를 잡기 전부터 시민 100여 명은 ‘내각 퇴진’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물러나라” “집에 가라”고 연호했다. 아베 총리는 흥분해 “남의 연설을 방해하는 행위를 자민당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질 수는 없다”고 외쳤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에 대한 일본 유권자들의 민심이 어떤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2012년 정권 탈환 후 승승장구하던 아베 총리는 자신과 부인이 연루된 학원 특혜 지원 스캔들로 체면을 구겼고, 일방적 국정 운영에 대한 반발 등이 겹치면서 2일 실시된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이번 선거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둔 자민당 내부에선 당장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과 도쿄 모처에서 회동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특히 올해와 내년은 아베 총리 필생의 과업인 ‘개헌’을 위해 중요한 해다. 아베 총리는 내년 가을 총재선거에서 3연임을 하고 2020년까지 개헌을 완수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참패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자민당의 참패는 예상된 것이었다. 아베 총리는 선거를 앞두고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명예교장이었던 모리토모(森友)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하고, 지인이 이사장인 가케(加計)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60%를 웃돌던 정권 지지율은 30%대까지 떨어졌다. 아베 총리는 “반성한다”며 두 번이나 머리를 숙였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자민당과 손잡았던 공명당이 고이케 진영으로 돌아선 것도 자민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 고이케 “기대 이상 결과에 감동”
지난해 7월 자민당 추천 없이 단기필마로 출마해 당선된 고이케 지사는 자신의 급여를 반으로 깎는 등 개혁적 언행으로 연예인급 인기를 얻었다. 2일 NHK 출구조사에서 고이케 지사의 도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답변이 77%에 달했다.
이 때문에 기성 정당과 정치인에게 실망한 국민들이 신생 정치세력에서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미국, 유럽을 거쳐 일본에 상륙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이케 지사는 이날 “(당장) 국정에 진출할 예정은 없다”며 총리 도전설에 선을 그었다. 안정적인 도정을 통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기존 정치세력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워 올림픽 이후 국정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아베 체제는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아베’라는 구심점이 상당히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내에서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지방창생상 등 ‘포스트 아베’로 거론되는 이들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