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나는 요즘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인천상륙작전’을 읽고 있다. 이 시리즈는 1945년 8월 15일 광복부터 1953년 휴전까지를 담았다. 그림도 아름답고, 구성도 잘되어 있는 것이 작가가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잘 느낄 수 있다. 각 권마다 각주가 달려 있고, 뒤에는 한눈에 보는 역사연표, 역사학자가 쓴 해설문, 참고한 책과 자료 목록까지 첨부했다.
이야기는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뉜다. 하나는 국가적 영역으로 당시 큰손들과 그들의 말, 행동, 결정을 볼 수 있다. 반면 한 가족을 다룬 부분에서는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고통과 비극이 와닿는다. 가끔 눈물겹고 어떨 때는 가슴 아프게 슬퍼서 잠시 책을 놓고 읽는 것을 쉬고 싶었다. 그 정도로 감동적이다.
‘인천상륙작전’도 그렇게 시작됐다. 인기가 많은 웹툰의 경우에는 영화, TV 드라마, 게임으로도 각색된다. 예를 들면 ‘미생’, ‘송곳’ 그리고 ‘은밀하게 위대하게’, ‘26년’이 다 웹툰에서 비롯됐다. 한국 웹툰은 매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 축제에도 출품되고 있다. 이런 현대적인 매체를 통해 다소 옛날 얘기처럼 들릴 수 있는 6·25전쟁이란 소재를 신세대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다.
북한은 어떨까. 한국처럼 북한에서도 6·25전쟁의 끝나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 그리고 거기도 만화책이 있다. 해마다 수십 권이 출판된다. 내가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할 때 북한 만화책을 연구하고 논문을 썼다. 북한에서는 만화책을 그림책이라고 부른다. 소재는 남한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거의 반 정도는 역시 6·25전쟁을 다뤘다. 그런데 동정과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애국 정서와 민족적 원한을 끌어내려는 내용이 많다.
전쟁에 대한 북한 만화책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북한 정찰병이 국군으로 위장하고 전선을 넘어와 미군부대에 침입한다. 남한 장교로 가장하고 위계를 쓰면서 ‘교활하고 악한 미제놈’과 ‘그의 민족반역자 주구들’을 성공적으로 속여서 군사 기밀을 알아내고 북한군에 알린다. 책 말미에 악당들은 다 처리되고, 주인공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다시 월북하거나 죽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겨진다.
모든 것이 흑백처럼 뚜렷하고 명백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애매모호하다. 지명, 날짜, 전투 이름 같은 역사적인 세부 정보가 없다. 그래서 다 꾸며낸 이야기인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들의 주요 목적은 북한 정권의 세계관을 다음 세대에 심는 것이다. 나에게는 하나도 감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읽을 때 가끔 코웃음이 나올 정도다.
휴전선 이북의 북한 청소년들은 전쟁을 잊기는커녕 전쟁과 관련한 선전물에 둘러싸여 있다. 복수를 맹세하는 만화책은 물론 포스터 벽화 노래 영화 등등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다. 이런 상처의 후유증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