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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유리천장과 양성평등

입력 | 2017-07-05 03:00:00


한국경마 사상 여성 기수로는 최초로 대상경주 우승을 합작한 김혜선 기수와 최우수 국산 3세 암말에 선정된 ‘제주의하늘’. 한국마사회 제공

안영식 전문기자

7월 첫 주는 양성평등주간이다. 실질적인 남녀평등을 도모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열린다. 그런데 대부분의 스포츠는 남녀유별(男女有別)이다. 남녀의 평균적인 신체능력 차이 때문에 맞대결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 어떤 분야보다 스포츠계의 ‘유리천장’은 견고하다. 종목, 프로-아마를 불문하고 남성 팀은 물론이고 여성 팀도 감독은 대부분이 남자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 스포츠계가 마찬가지다.

가뭄에 콩 나듯 여성 감독이 부임해도 단명하기 일쑤다. 성적이 부진하면 바로 퇴출이다. 구단주뿐 아니라 팬들도 진득하니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것 봐, 여자가 그렇지 뭐’라는 편견이 팽배해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6년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5점으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29위)다. 우리나라 여성 스포츠인의 고위직 차단도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여자농구 스타 박찬숙 씨다. 그는 감독 공채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실력보다 성별이 우선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도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남자 지도자를 선호하는 보수적인 스포츠계는 ‘유리’보다 심한 ‘철벽’이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올림픽 구기 종목 사상 한국 최초의 은메달을 따낸 주역이 이런 홀대를 받을진대 동료, 선후배들은 오죽하랴.

그런 의미에서 여성 경마기수 김혜선(29)의 최근 코리안오크스배 우승은 눈길을 끈다.

그는 국내 경마 시행 95년 만에 여성 기수로서는 최초로, 남성 기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대상경주를 제패해 ‘경마계의 유리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상경주란 부문별 최우수마(馬) 선발을 위해 기량이 출중한 경주마와 기수가 엄선돼 출전하는 메이저 경주다.

또한 경마는 올림픽 종목 중 유일하게 남녀 구별 없이 메달을 다투는 승마와 마찬가지로 성(性) 대결 스포츠라는 점에서 그의 우승은 각별하다. 베팅 스포츠인 경마에서 여성 기수는 평가절하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해당 경주에서 단승식 56배, 복승식 475배, 삼복승식 1만7274배의 고액 배당이 터진 게 그 증거다.

김 기수는 1800m 경주의 막판 직선 주로에서 폭발적인 스퍼트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여성 기수에 대한 경마 팬의 편견을 통쾌하게 날려 버렸다. 김 기수는 “내가 여성이라는 게 부각되기보다는 그저 기수로 불리며 차별 없는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우승 소감에는 양성평등에 대한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렇다. 남녀평등의 요체는 ‘기회의 평등’이다.

양성평등은 스포츠계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최근 발표한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세부 혼성 종목은 모두 18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의 9개에 비해 배로 늘었다. 게다가 남자만 출전하는 세부 종목(사격 50m 권총 등)을 다수 폐지시켜, 도쿄 올림픽의 여성 선수 비율은 역대 최고인 48.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 올림픽 골프 경기 예정지인 가스미가세키 골프장 측은 지난달 “정회원을 남성으로 제한한 정관을 개정해 여성의 정회원 입회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여성 차별 골프장에서 올림픽 경기를 치르기 곤란하다’는 IOC의 엄포가 영향을 준 듯하다.

박미희 감독(흥국생명)의 2016∼2017시즌 프로배구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 찬유엔팅 감독(이스턴 스포츠클럽)의 2015∼2016시즌 홍콩 남자프로축구 우승은 대서특필됐다. 첫 여성 감독의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지도자도 충분히 팀을 정상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만큼 여성 감독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성이 아닌 그냥 지도자로만 보아 달라.” 두 감독의 우승 소감은 김혜선 기수와 거의 똑같다.

불이익을 주는 것만이 차별이 아니다. 특별한 시선으로 보고 관심을 보이는 것도 차별일 수 있다. 직업 호칭에 여(女)를 붙이는 게 그렇다. 여검사, 여기자, 여교수, 여의사…. 여성에게만 붙는 이런 호칭은 직업의 세계에서 여전히 여성이 소수자인 현실의 방증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기 내각은 여성 장관 30%로 출발해 단계적으로 남녀 동수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첫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했다. 정치 분야에서 이미 전 세계적인 화두이자 대세인 양성평등이 스포츠계에서도 하루빨리 도도한 파도가 되길 기대해 본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