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10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를 보러 요즘 머물고 있는 도시의 미술관에 갔다. 조각, 판화 등으로 나뉜 열여섯 개의 섹션 중 대표작인 ‘걷는 남자’를 볼 수 있는 공간에 관람객이 가장 많았다. 고뇌하는 듯 보이는, 작은 머리에 거대한 발을 가진 대형 청동 조각 앞에 서 있으려니 “현실의 인간상과 가장 가까운 것을 만들려고 한 결과 가늘고 긴 작품으로 제작되었다”라는 자코메티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내 마음을 뒤흔들어 버린 작품은 따로 있었다.
좋아하는 시 중에 이렇게 시작하는 작품이 있다. “여기 사과가 놓여 있었고, 여기 책상이 있었다. 이것은 집이었고 이것은 도시였다. 여기 육지가 잠들어 있다.” 제목은 ‘사과에 대한 만가’. 이 짧은 시에서 ‘대체 사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잔의 사과 그림을 실물로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그것은 사과 이상의 어떤 것, 삶이라든가 인생, 뭐 이런 추상적이고 말하기 힘든 것을 정물로 표현해 놓은 듯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다시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과란 무엇인가.
사과는 과일이다. 아닐 때도 있다. 사과는 정물(靜物)이며 어떤 이에게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둥근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숙소로 돌아와 책을 펼쳤더니 이런 문장부터 눈에 들어온다. “뭘 더 생각할까!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살았고 살아갈 날.”
조경란 소설가